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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Mar 14. 2023

뭐라고요? 의사결정이 또 바뀌었다고요?

계획형 인간이 스타트업 PO로 살아남는 법


나는 통제하는 인간이었고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PO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었고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넘어갈 수 없었으며

스타트업은 절대 계획한 것을 온전히 진행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극복했고

오히려 즐기며 일한다.




처음에 나는 UX디자이너이자 PM으로 일하며, CPO가 그려놓은 큰 그림 안에서 세부 기획을 하고 UX를 개선하고 UI를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계획은 매주 바뀌었다.

분명 저번주 월요일까지는 홈페이지 리드 전환 수 상승이 메인 어젠다라고 했으면서 이번주는 아니랜다. 전사 방향성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난주까지는 나보고 홈페이지 개선을 메인으로 가져가자고 했으면서 지금은 내부 직원들이 쓸 어드민 사이트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설명을 들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시장 상황이 엮어있었고, 투자 상황이, 또 비즈니스 방향성에 대한 의사결정이 엮여있었다. 이해는 갔지만 답답했다. 왜냐면 딱 일주일 뒤에 개발해야 할 기획이 다 떨어졌거든. 일주일 안에 나는, 바뀐 목표 지표에 맞게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완료해야 했다.




나는 매주 스트레스받았다.

매주 의사결정이 바뀌었고 나는 그 사실을 결정이 완료되면 갑작스레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CPO에게 의사결정이 완료되기 전에 그냥 알려달라고 했다. 정리 안되어도 좋으니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나이브하게라도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모든 고민과 의사결정 과정을 고스란히 전해 들었다. 많이 도움이 됐다. 어쨌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계획했고,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여 대응할 준비를 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대비가 가능했다. CPO가 중간과정을 거의 모두 공유해 주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PO가 되고 팀 리더가 된 순간 모든 대비는 불가해졌다.





CPO의 징검다리 없이 내가 프로덕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프로덕트의 목표지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이뤄내야 했을 때. 그러기 위해 CPO와 혹은 대표와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더 잦게 하게 되었을 때부터는 모든 계획과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가 불가했다. 아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대비할 시간에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오히려 빠르게 기존 목표지표를 수정하고 새로운 로드맵을 짜는 게 나았다.


PO는, 혹은 리더는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며 관리하고 팀원들이 정확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요구 사항을 100% 파악하고 업무를 분배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리더가 되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팀이 성과를 내는 것,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합한 로드맵과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팀원들이 목표지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그게 핵심이었다. 관리와 파악이 아닌 비즈니스 임팩트와 적시에 적합한 일로 성과를 내는 것이 메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더니 플랜을 세우는 것에 대한 압박이 사라졌다. 계획은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니 오히려 계획을 잘하는 내 능력은 압박 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의사결정이 바뀌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성장하는 스타트업 환경에서 필연적이다. 그에 따라 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도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필연적이다.

스타트업에서 목표지표와 의사결정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거나,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고 고여있거나, 변화하는 비즈니스 상황을 무시하고 해당팀이 적시에 적합한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즐기기로 했다.

우리 회사가 성장하고 있음을. 우리 대표가 바뀌는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음을. 우리 팀이 기민하게 반응하여 성과를 내고 있음을.


나는 절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나는 절대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넘어갈 수 없었다.

여기는 스타트업이기에.


그래서 나는,

마무리되지 않은 일에 행복을 느끼기로 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상황을 즐기며 일하기로 했다.

그렇게 성장을 즐기며 성장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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