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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May 30. 2024

식물을 바라보며 (식물명상)

초록이 주는 선물

아이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하는 일이 있어요.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초록 식물에게 물을 주는 일이에요. 베란다에는 극락조, 홍콩야자, 청페페, 스투키, 알로에, 다육이들이 자라고 있답니다. 14개월 아기가 분무기를 눌러 물을 주진 못해요. 그럼에도 아기 곁에 화분을 가져가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분무기를 들어줘요. 몇 번 하다 보니 아기도 식물에게 물을 주는 건지 알고 베란다에 나오려고 하더군요.


한 가지 고백하자면, 작년 폭염과 실외기에 더운 바람에 식물 잎이 타들어가 고초를 겪었어요. 이사한 집의 여름을 잘 몰랐던 거죠. 아기 키우면서 식물을 돌보기엔 역부족이었나 봐요. 식물들에게 서늘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물을 자주 주지도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답니다.


저는 식물이 주는 자연의 향기, 초록의 에너지를 좋아합니다.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 갑갑한 마음에 베란다에 나가서 햇볕도 쬐고, 물도 주면서 잠시 쉬어가곤 하죠. 아이와 돗자리를 피고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아기에게 간식을 주며 식물 곁에 있게 해 준답니다.



5월 초에 씨앗을 선물 받았어요. 연민메이트의 미희님은 정원사이자 식물들을 사랑하는 분이세요. 같이 씨앗에서부터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과정까지 함께 해보자고 하시며 식물 키트(플라스틱 화분 2개, 받침 2개, 씨앗 2개, 흙, 마사토)를 보내주셨어요.

식물 키우기 키트


1일차: 5.7 키친타월 위에 씨앗

1일차: 5.7 키친타월 위에 씨앗을 올려 분부기로 흠뻑 적시듯 씨앗에 물을 주었어요.

매일 물이 마르지 않게 씨앗에 물을 주었더니, 황금 껍질을 벗고 씨앗들이 조금씩 자라났어요.

왼쪽 제라늄 매버릭 애플블로섬은 뿌리가 먼저 나왔고, 오른쪽 제라늄 매버릭 화이트는 잎이 먼저 났어요.

왼쪽 제라늄 매버릭 애플블로섬, 오른쪽 제라늄 매버릭 화이트

24일이 지난 지금(2024.05.30) 새싹의 상태예요. 초록 새싹 쌍떡잎 위로 본 잎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애플 블로섬은 잎에 물이 닿여 조금 노랗게 변했는데 그래도 본 잎을 틔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즘 씨앗에서 싹을 틔어내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어요. 전 하루에 한 번만 새싹을 들여다보지만, 새싹은 이 잎을 틔어내기 위해 매일 24시간 노력하고 있다는 거예요. 길가에 핀 꽃도 하루아침에 피어난 게 아닐 텐데 꽃놀이에 가면 활짝 핀 꽃이 당연하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그런데, 새싹을 틔운 제라늄을 보니 하나도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시작과 끝, 모습만 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요.


씨앗은 싹을 틔어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DNA를 타고났어요. 제가 하는 일을 보조적인 일이지요.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거요. 바람이 통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고, 햇볕에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곳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지피팰렛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잘 자라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라봐주는 거예요. '제라늄아 넌 잘 자라고 있어. 너의 꽃을 틔우기 위해 내가 도움을 줄게'



씨앗에서 제라늄 꽃이 피는 과정은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해요. 그때까지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제라늄이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어요. 잊지 않고 매일 바라봐주고 돌봐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집안 곳곳에 식물들을 두어요. 현관 신발장 위에 있는 몬스테라예요. 수중재배로 키우는 중인데 소라빵 잎에서 또르르 잎이 펼쳐지고 있는 과정이에요. 여린 잎일수록 색이 연하고, 반질반질해요. 몬스테라 잎에 손바닥을 데고 에너지를 주고받아요. 마음을 전해요.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너의 성장하려는 에너지가 나에게 큰 힘이 돼. 멋져'


집들이 선물로 받은 스투키예요. 처음에는 7개의 스투키가 있었는데, 물이 많아서 썩고 물러져서 4개만 남아 있었답니다. 통통한 잎으기둥같이 생겨서 변화가 없던 화분이었는데, 올해 3월부터 새끼를 까기 시작했어요. 삐죽삐죽 잎만 올라오다가 이젠 단단한 스투키 새끼들도 올라왔어요.


스투키는 너무 변함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던 식물이었어요. 그저 병충해를 입거나 무르지 않기를 바라며 흙이 마르면 물을 주었어요. 식물들도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이 있고, 적게 필요로 하는 식물들이 있죠. 그중 스투키는 물을 적게 필요로 헀어요. 매일 바라봐도 물을 매일 주지는 않았어요.


식물명상을 하면서 식물의 곁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자연스럽게 제 마음의 평화도 찾아왔고요. 식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잎을 틔어내려고 하는 식물들을 응원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응원하죠. 새싹을 틔우기도, 잎을 크게 키워나가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요. 저도 이러한 과정을 필요로 하겠지요.  식물을 키우며 제 자신도 키워 나가는 중입니다.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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