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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May 02. 2024

내 두 발로 온전히 느끼며 걷기 (걷기 명상)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산책

아이의 예방접종이 있는 날이다. 예약시간은 10시 40분. 

요가는 오전 9시 수업이다. 요가 수업 끝나고 병원에 가기로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요가 수업 마칠 때쯤, 남편이 나를 태우러 온다고 해서 오늘은 버스를 타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카페나 편의점 같은 곳에 가기에는 시간이 길지가 않아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자주 가는 동네였지만, 운전해서 지나가다 보니 걸어서 다녀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발 한발 사뿐히 발걸음을 옮겼다.


종종 산책을 하기 전, 내 발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한다. 요가복 차림이라... ㅎㅎ



좁은 골목길에 차도와 인도가 나뉘어 있다. 반아치형의 천장 구조물이 보인다. 왼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예쁜 꽃들이 화분이 심겨 있다. 평소 같으면 휙 지나가 버렸을 공간이지만 천천히 걸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 분식집도 보였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걸 보니 어묵 국물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분식집도 있었다니.


화분에는 하얀 데이지와 빨간 팬지와 노란 팬지가 피어 있었다. 꽃을 보며 한발 한발 걷다 보니, 다소 긴 거리가 지루하지 않았다. 색색의 꽃들이 눈동자 안으로 스며들었다. 은은하게 코끝을 간질거리는 꽃향기가 반가웠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꽃잎이 춤을 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발걸음도 가볍다. 


한발 한발 발걸음을 옮기며 발에 닿는 느낌을 느껴본다. 발 뒤꿈치부터 발 아치, 발가락 끝까지. 바닥에 살포시 닿는 이 느낌. 오랜만이다. 종종걸음이 아닌 온전한 걸음. 정성스럽게 발길을 옮기며 지금 여기에 내가 걷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초등학교 교문 옆. 초록의 긴 대나무가 보인다. 고개를 들어 대나무를 바라본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시원한 소리도 들려온다. 쭉쭉 하늘로 뻗은 대나무 대가 한들 거린다. 흩날리는 바람에도 자신의 중심을 잡고 있는 나무. 잔잔한 잎들만 한들한들 나부낀다. 




도심 속에서도 잠시 시선을 돌리면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빠른 걸음이 아닌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하는 마음으로 걸어 본다. 10분 남짓. 내 마음은 가벼운 발걸음에 소풍을 떠났다. 언제 느껴보았던 여유인가. 


요가 시간에 맞춰 갔다가 수업 끝나고 떠나는 곳이 아닌. 

그곳을 안다는 건. 내 발걸음이 기억하는 곳이다. 내 눈에 담고, 코로 향기를 느끼고, 뺨으로 스치는 바람을 느낀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곳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시선과 몸이 머물렀던 곳. 걸으며 호흡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가벼워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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