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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May 09. 2024

꼭꼭 씹어 오감으로 느끼며 먹기 (먹기명상)

허겁지겁 먹다가 알아차린 먹기명상

먹기명상을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혼자가 아닌, 돌아기와 같이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아기 떠먹이랴, 내 밥 먹으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아기가 일어나서 팔을 뻗으면 롱(long) 팔이라는 걸 가끔 잊고 기습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아이 먼저 먹이고, 남편과 뒤에 먹으려 하니 그것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겸상을 시도한다.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남편 친구네 가족과의 데이트 식사, 시댁 식구와의 저녁 식사, 친정 부모님과의 저녁 식사 외식이 잦았다. 남편 친구네 가족과 해양박물관 관람, 도라에몽 전시, 마지막으로 저녁식사 코스까지. 하루가 길다. 아이들도 어른들 따라다닌다고 얼마나 고단했는지, 중간에 낮잠도 자고. 풀충전하고 나선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식당에 들러 아기 의자를 장착하고 유아식을 시작한 아기를 위해 열심히 김밥을 싼다. 치즈도 돌돌 말아 대령한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치즈와 과일, 과자는 필수다.)

보글보글 순두부찌개가 끓어오르는 걸 보면서 아기 손에는 닿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아기가 김밥을 손에 쥐고 냠냠 먹을 때. 그 순간 나도 숟가락을 들어 빨갛게 보글보글 거리는 국물을 한술 떠 본다. 맑고 해산물 맛이 많이 나는 순두부찌개구나. 야들야들한 두부, 순두부찌개의 진리인 계란수란까지. 홀홀~ 거리며 먹고 싶지만, 한술 뜨고, 또 아기 챙기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내가 순두부찌개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건 기억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거지만, 정신없는 찰나에도 내가 소중한 한 끼를 먹으며 맛을 기억한 건 대단한 일이다.


아기 배꼽시계에 맞춰 와서 그런지. 아기도 곧 잘 먹는다. 아기 한번 바라보고, 나도 잽싸게 젓가락을 들어 불고기 한 점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부들 부들한 소불고기의 맛. 나도 배가 고팠나 보다. 생각해 보니, 요즘 1일 1식으로 첫 곡기가 들어가는 시간이었음을. 식단 조절 겸 하루 한 끼만 먹고 있다. 흰쌀 밥도 한 입 머금고 꼭꼭 씹어 단물이 느껴질 때까지 오물오물거려본다. 


아기를 챙겨가며 밥을 먹는 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먹고 사는 거 보면 이것도 점점 익숙해진 일상 중에 하나이고, 새롭게 먹는 식사 스킬이 생긴 것이다.



5월 5일 어린이날.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소식에 남편과 늦잠을 자고 있었다. 드르르르 진동 소리가 울린다. 한 번이 아니라 연속으로. '어디서 온 전화지?' 부스스하게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바라본다. '엄마' 


"여보세요?"

"응~ 자는 목소리네." (어떻게 알았지?)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었어요."

"어린이날인데 집에 있네? 아빠가 아기 어린이날이라고 꼬까신 사준다고 하시네."

"안 그래도 발에 맞는 신발 하나 사줘야 할 것 같았는데 잘 됐어요."

"준비해서 나갈게요."

"그래. 그럼 우리도 준비하고 나갈게."


친정 식구와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걸어서 5분. 마침 준비해서 나오는데 비가 세차게 불어온다. 그나마 차가 있으니 다행이지. 아기 신발도 사고, 집 근처 초밥뷔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휴여서 그런지 대기 인원이 36이다. 잘 기다려서 먹는 편은 아닌데, 비도 쏟아지고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3-40분 정도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다. 


아기 의자를 가져와 물티슈로 닦는 건 이제 척하면 척이다. 아기가 먹을 밥으로 김밥을 만들었다. 이제 일반식을 먹을 수 있으니 한결 편해졌다. 손으로 주무르지만 않는다면. 남편이 아이와 내가 먹을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초밥을 가지러 가려고 해도 줄을 한참 서야 한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그릇 부딪히는 소리, 옆테이블에 이야기하는 소리. 전쟁터처럼 소란스럽다. 뷔페는 자신이 먹고 싶은 걸 가져와서 골고루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많은 음식을 먹다 보니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맛이 잘 없다. 아이를 먹이고, 내 입에 음식을 가져가기 바쁘다. 아이도 밥을 먹을 만큼 먹었고, 모든 가족들이 음식을 가져와 자리에 앉았을 시점. 뷔페에 무슨 음식 있나 둘러보러 갔다.


하와이안 샐러드


그 많던 초밥도 내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몇 가지 음식을 챙기면서, 하와이안 샐러드를 챙겼다. 내가 좋아하는 망고와 용과로 어우러진 샐러드! 비싼 초밥 집에 갔는데 하와이안 샐러드라니. 숟가락으로 사르르 살얼음이 얼려져 있는 망고를 떠서 한입 먹었다. 입 안에서 망고가 미끄러지듯 말랑 말랑한 게 느껴졌다. 우와~ 이건 뭐. 기름지고 더부룩했던 음식들이 싹~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목구멍을 스쳐 지나가 시원하다. 달콤하다. 깔끔하다. 내가 좋아하는 용과도 한입 먹어본다. 용과의 까만 씨가 톡톡 씹힌다. 


전쟁 영화에서 보면, 폭탄이 날아오고 폭격기가 날아다니는 장면에서도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순간 시끌벅적한 뷔페에서 고요함을 찾았다. 내 눈앞에 있는 맛있고 예쁜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엄마 아빠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돼지가 되는 장면처럼 와구와구 먹는 모습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 한 점을 썰어 꼭꼭 씹는 느낌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이성을 차리고 나서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봤다. 아이가 부산하게 움직이거나 요구를 하는데 응대해도 태연하게 받아주면서 말이다. 연어초밥도 한입, 따뜻한 폭립도 한입. 


이상하게도 먹는 음식 앞에서 천천히 차분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지 하면서도, 참 쉽지가 않다. 오감으로 먹어야지 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있거나 무언가 방해요소가 있으면 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내 몸이 기억하고, 머리가 기억하고 있구나.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이 느끼는 느낌을 기억하고 싶다. 싱싱한 초밥 위에 있는 회의 날 것의 맛, 입안에서 알알이 흩어지는 밥알. 오마카세는 아니지만 한점 한점 먹으며 느끼는 초밥. 오늘의 원픽은 하와이안 샐러드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행복, 좋은 사람들과 먹는 소중한 식사. 이것이 소소한 행복 아닐까.


음식에 맛을 음미하듯 내 인생도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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