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게 하는 일

29세 미혼 여자의 출산에 대한 고민

by 벼리언니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선택되어” 시작되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세상이었고, 그렇게 삶이 ‘주어졌고’,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제 서른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사회초년생이라는 꼬리표를 이제 막 단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결혼과 출산이라는 주제를 논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기에는 너무나 이 사회에서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도 정말 많고, 결혼한 신혼부부, 어린 아이를 육아하는 부부 등 이 생애단계를 다루는 콘텐츠도 정말 많고, 이는 사회적 문제와도 정말 많이 결부되어 있다.

저출산은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가 될수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나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정말 많이 이야기 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고, 그럼에도 어떠한 큰 행복을 주는지는 그걸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논할 수 없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정말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고 한다. 나와 유전자를 나눈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정말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하고, 이 아이에게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유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나의 가족, 친구, 연인인데, 난 그 사람들이 '외모가 잘나서', '착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어서'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이 가끔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난 그들을 사랑하기에 응원하고 포용할 수 있다. 아이는 그 이상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일 것 같다.

흉흉한 세상 속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범죄나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수없이 접한다. 그때마다 한번씩 보는 말이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감히 한 단어로 나타내는 말은 없다'라는 말이다. 그만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한 단어로 함축할 수 없고, 내 뼈와 살이 찢기는 고통보다 더한 그 감정은 모두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심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나의 자녀에 대한 필연적인 사랑은 분명히 지금의 내가 느낄 수 없는 감정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키우며 내 인생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나도 아이가 커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싶어서. 이러한 것들이 자녀를 출산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태어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나의 선택으로 인해, 이 세상에 새로운 객체가 태어나는 것이고, 그 존재는 또 내가 걸어온 것처럼 삶을 가꾸어나가고, 성장해가야 하는데, 그 존재에게 ’너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니?‘를 물어야 하는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아이를 낳음에 있어서 항상 '나'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물론이다. 아이를 품기로 선택하고, 출산의 과정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은 부모의 선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정말 태어나서 이 삶이라는 길을 갈 준비가 되었고, 그 길을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정작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사실 이상한 말일수도 있는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에게 ’너 태어나고 싶니?‘라고 물어보는것도 말이 안된다.


그러면, 이걸 지금의 우리 시점으로 가져오면, 우리도 이 삶을 선택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주셨고, 그렇게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존재의 이유'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왜 존재하냐'라는 질문인데, 그 존재의 이유는 분명하다.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선 존재에는 큰 이유가 없고, 그저 주어진 삶인 것이다. 그 주어진 삶에서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그 출산과 탄생의 '이유'가 아니라, '의미'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 부모는 출산과 새 생명의 탄생을 부모의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새 생명의 입장에서는 우선 이유가 없이 존재하게 되었고, 삶이 주어지게 되었고, 어떻게 이 삶을 채워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일 것이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가장 새롭게 고민하게 된 영역이 바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볼수 있는 문제여서 조금 더 익숙한 문제였지만, 출산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이고, 더욱 먼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출산과 나의 자녀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한 선택으로 새 생명이 또 100년 남짓한 인생을 감당하게 될 것인데, 그 생명이 그래도 태어나서 존재하게 된 '의미'를 알아가는 그러한 삶을 선물해 줄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로서의 의무와 자격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는 길은 너무나 위험할 수 있다. 결국, 나는 한 생명을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잘 자라나고 이 세상에서 본인만의 의미를 찾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독립'하고, 또 그 생명도 또 다른 가정을 꾸려,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게 하는 전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고, 인생에서 의미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은 그 풍요로운 마음을 새 생명에게 전달해주고, 경험하게 해주면 그 것이 그 생명의 의미가 될 것이다.


결국, 출산은 생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그 존재가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내가 누군가의 삶을 존재하게 할 때,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존재가 자라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또 다른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의미를 찾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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