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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an 19. 2020

주의 '길없음'

 ‘길없음’ 표지판을 실제로 본 적은 딱 두 번뿐이다. 첫 번째는 친구네 집 옆이었고, 두 번째는 군대  행군 때이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기로 한 날 하루 전, 나는 친구들과 다른 한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같이 출발하기로 했었다. 택시를 타고 친구네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그 입구 옆 공터에 큰 바리케이트와 함께 ‘길없음’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바리케이트를 보며, 마냥 신기했다. 더이상 길이 없는 곳이 우리동네 한복판에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처음 보는 것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내 상상에서 ‘길없음’이란 글자가 있을 법한 곳은 나니야연대기의 숲 속이나 DMZ 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표지판 어딘가 근처에는 절벽이 있고, 마치 생과 죽음 사이를 가르는 큰 계곡이 있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사실은 공터가 뒤로 늘어서 있고, 심지어 바퀴자국도 있으며, 게다가 친구네 집도 있다.


 군 입대한지 얼마되지 않아, 훈련소 마지막 코스로 ‘시루봉’ 이라는 봉우리를 넘어가는 행군이 있었다. 그래도 걸을만한 평지를 2시간 정도 걷다가 시루봉 둘레길이란 곳에 도달했다. 이어, 둘레길이라는 포근한 이름답게, 경사가 완만하여 행군이란게 그리 힘든게 아니구나 생각하며 행군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길이 점차 좁아지는 것 같더니 ‘길없음’ 표지판이 나타났다. 전에 봤던 친구네 집의 ‘길없음’의 글자보다는 작고 허름한 표지판이었지만, 그때와 달리 그곳엔 정말 길이 없었다. 지금까지 쭉 이어지던 길이 표지판 쪽으로 점점 다가갈수록 옆의 비탈을 향해가더니, 점점 좁아지다 표지판 앞에서 그 비탈로 쏙 붙어버렸다. 여기보고 저기봐도 위아래 다 비탈로 끝나버린 길이라서 ‘아, 여기서 이제 다시 반대로 돌아가는 거구나, 싶었는데, 맨 앞의 조교가 그 비탈을 올라가기 시작하더라. 자세히 보니 오솔길이 있었다. 오솔길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걸맞기 않게 비탈이 너무 심해서, 이만기나 강호동 같은 사람들이 이홍기나 강승윤 같은 이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길 없다더니, 나는 ‘길이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두 번 다 내가 생각한 ‘길없음’은 아니었다. 그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도 아니고, 심지어 길이 없다는 뜻도 아니었다. 거긴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고 내 친구의 집도 있었으며,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끝엔 심지어 쉼터까지 있었다. 


 ‘길없음’ 표지판을 실제로 본 건 이 두 번이 전부지만, 살면서 길이 없다는 느낌은 받은 적은 많다. 대학 입시, 입대, 실연 매 순간에 난 길이 없는 곳에 서있다고 느꼈다. 대학 입시 원서를 넣으면서 도대체 난 뭘 해야할까 고민하며, 도무지 어느 과를 선택해야할지, 수많은 길 앞에서 길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입대 날짜를 받고, 그 군인이라는 일방통행의 23개월 코스의 진입로에서 정말 벼랑 끝에선 기분이었다. 실연을 할 때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마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길없음’ 표지판 앞에 서있는 기분이다. 대학을 계속 다녀야할지 말아야할지. 대학 입시에 세워져있던 표지판을 넘어 길을 걸어오긴 했는데, 다시 또 다른 표지판을 마주쳤다.


 이런 표지판들은 마치 전환점 같다. 뭔가 내 인생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시점. 결국 인생이란 것이 과거로만 설명된다는 점에서, 인생이 정해져있지는 않다. 그러나 길이 또 길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자의 또는 타의대로 언제나 조금은 예상에 맞춰 살아가고 조금은 예상대로의 과거를 만들어간다. 이런 예상대로의 삶에서 마주치는 전환점이 ‘길없음’이란 느낌인거 같다. 기존의 예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되는 순간. 이때 다른 길로 돌아갈수도 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수도 있다. 어차피 삶은 계속 되어야하기에 선택은 강요되겠지만, 다른 길로 돌아가든 무시하고 앞으로 가든 뭔가 달라도 다른 의미의 길이 될 것이다. 이 전환점에서 품은 의문에, 답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 앞에 있던 ‘길없음’ 표지판은 지금 사라졌단다. 공터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길이 생겨났다. 시루봉의 비탈진 오솔길로도, 여전히 사람들은 코 앞에 세워진 ‘길없음’ 표지판을 못 본 듯 그 길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길없음’ 표지판은 그저 이 정도의 표지판일 뿐이다. 그 앞에 있을 의문 자체와 그 의미가 중요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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