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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10. 2020

무뎌짐을 기대하며


책 '아몬드'를 읽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작중에서 장례식장에서 우는 여경에게 훈계하는 선배 경찰의 말이다. 이런 클리셰는 여기저기서 많이 본 듯하다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었고, '라이브'에서도 본 것 같다. 그리고 내게서도.


앞으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날 것이고,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경찰 일을 하면서 몇 번이고 내 마음속으로 되새겼었다.


자살의 슬픔과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분노, 뿐만 아니라 잊히지 않는 잔인한 장면들.


신임순경으로 배명받고 근무 첫날.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호구조사를 당하던 중 내 생 첫 신고가 떨어졌다.


신고 내용은 "떨어졌다. 사람이 떨어졌다."

자살이었다. 투신자살.


터진 머리통과 제 위치를 잃은 팔다리. 비릿한 피 냄새.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을 확인하고 직접 흰색 천을 덮어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풀럭대는 천이 날아가지 않도록 잡고 있어야 했다.


그 날의 기억은 예상대로 강렬했다. 지금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리고 며칠 뒤, 또 자살 신고가 들어왔다.


목을 매었다. 시신이 축 쳐지고 목에 감았던 줄이 목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방에는 술 냄새와 담배냄새와 시체 냄새가 뒤섞여났고, 나는 그 사람이 숨을 쉬지 않는지 확인해야만 했고 그 사람의 신분증을 찾으러 주머니와 지갑을 뒤져야만 했다.

툭, 툭툭. 시체가 움직일까 무서웠다, 바보처럼.


"앞으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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