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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11. 2020

왈왈

"늙는 거 싫어"


나는 상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늙는 거 싫어. 왜 늙어야만 해?"

나는 이미 스물여섯의 나이로 이런 투정을 부릴 나이는 아니었기에,

상대도 맞받아쳤다.

"투정 부리지 마. 누구나 다 늙는 거지.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늙어가자"

우리 같이 늙어가자. 마치 늙지 않고 싶다면 늙지 않을 것처럼,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서, 장난을 더 치고 싶어 졌다.

"아니, 난 안 늙을 거야. 한 서른다섯 살까지만 늙다가 그만 늙을래."

"어이구 그래도 스물여섯은 너무 어린가 보지?"

"그럼. 서른 다섯 정도는 먹어야 자리도 잡고 건강도 있고 적당하잖아. 스물여섯은 아직 뭐가 없어"

상대가 어이없단 듯이 다시 물었다.

"뭐가 없어?"

나는 외국에서 하듯, 두 손의 검지와 중지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응, '뭐'가 없어. 성숙미? 노련함? 이런 단단함 같은 게 없달까?"

상대가 이런 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럼 늙으면 좋은 거네, 아직은"

"그렇지, 아직은"

"그래, 그럼 그때까지만 우리 같이 늙어가자."

"자꾸 같이 늙재. 너나 늙어"

상대가 투정을 부리면 말했다.

"왜, 같이 늙자."


우리 집 강아지는 그렇게 소원대로 나랑 같이 늙다, 먼저 다 늙어버렸다.

같이 늙자더니, 혼자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늙어버리곤 멀리 가버렸다.

늙는 거 싫다고, 나는 네가 늙는 게 싫다고. 새끼 강아지 말고 튼튼한 개로,

한 서른다섯의 성인의 모양처럼 안 늙으면 안 되냐고 내가 그렇게 투정을 부렸었는데.


그 뒤론 강아지를 기르지 못한다. 다시 또 늙는 게 싫어서.


주인이 죽으면 먼저 죽었던 강아지들이 천국 문 앞에서 기다린다더라. 왈왈.

"늙기 싫다더니, 이제 다 늙었네? 보고 싶었어" 왈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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