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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26. 2021

한의학은 믿을만한가

역시 발목은 한의원

어릴 때는 한의원이라고 하면 꾸리꾸리한 한약 달이는 냄새랑 날카로운 침 때문에 꽤나 질색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가면서 서양의학이 진짜고 한의학은 유사의학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었다. 침놓고 뜸놓고 이것저것 식물을 달인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니까 뭔가 해리포터에 나올 듯한 수업 내용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의학으로 인정받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심지어 한의사가 된다는 건 꽤나 이루기 어려운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멍청해서 그런 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한의원도 줄곧 잘 다닌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믿을만하다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있나. 약을 지어먹거나 사상의학을 따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다 발목이나 손가락 인대를 다칠 때면 주위 추천을 따라 한의원을 찾았었다. 효과가 있는건가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잘 다녔었다. 정형외과를 가도 물리치료를 하는데 그거랑 이거랑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고 다들 금방 나았다고 하니까 그냥 동네 형들 추천따라 한의원을 갔었다.


몇달 전에 또 발목을 다쳤었다. 그리고 예사 그렇듯 붓다가 말길래 방치했다가 두어달 동안 발목이 어딘가 불편하고 욱신거리는 것이 반복됐다. 늦게나마 정형외과를 가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역시 발목은 한의원인가.


피부과를 갈 일이 있어 번화가에 나갔다가 치료받고 나오는데 갑자기 또 발목이 욱신거렸다. 눈 앞에 한의원이 보였다. 살짝 기대감이 올라오면서 한번 가볼까 생각이 들었다. 번화가 한의원은 조금 남다르지 않을까.


반말을 하더라. 뭔가 사짜 냄새가 쎄게 났다. 얘기는 잘 들어줘서 진료를 잘 보고 치료를 받으러 갔다. 약침을 놓고 전기침도 놓고 뭔가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치료를 받고 나왔다. 역시나 추천받고 가볼껄 그랬나. 반말을 하는게 뭔가 믿음이 안가서 다음 예약을 잡자는 걸 핑계를 대고 나왔다. 의사보단 유튜버 같은 느낌이 드는 의사였다.


주위 사람들한테 얘기했더니 다른 곳을 추천해줬다. 다들 맛집 하나는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것처럼 한의원 하나씩은 품고 사나보다. 다음날 마침 쉬는 날이라 점심을 먹고 추천받은 한의원으로 갔다. 이상하게 병원을 가려고하면 안 아픈 거 같은 기분이다. 안 갈까하다가 OO이가 그래도 다녀오래서 집을 나섰다.


어쩐지 거리가 꽤 가깝다 싶었는데 막상 가니까 어릴 적에 몇번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인가. 침대에 누워있으니 의사가 와서 이것저것 묻고는 바로 침을 놓았다. 이미 만성이라고 앞으로 열번은 더 와야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살짝 귀찮긴 했는데 거리도 가깝고 간증들도 있으니까 그냥 믿고 다녀보자 싶어서 나가는 길에 다음주까지 예약날짜를 잔뜩 잡아놓고 왔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팔랑귀다.


지금도 발목이 시큰거린다. OO이는 안 아파져도 계속 다니라고 한다. 발목을 하도 많이 다쳤어서 저번 정형외과에서 발목 인대가 없다는 둥 발목이 많이 흔들려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둥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병원에서 재진을 받으니까 헛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이런 경우엔 안 좋은 쪽으로 더 기울어지는게 사실이니까. 한의원을 계속 다녀보고도 계속 불편하면 진짜 병원 한번 제대로 찾아가봐야지.


한의사님 제 발목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술하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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