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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04. 2021

완결되지 않은 삶 -2

운 좋게 최종합격을 하고, 다 끝인 줄 알았다. 해냈다는 성취감.


어떻게 보면 경찰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고 참으로 박복해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우도 그렇게 좋지않고 책임은 막중하다. 막내의 삶은 더더구나 힘겹고 시간이 해결해줄 날까진 너무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난 즐거웠다. 4조2교대의 삶은 보기보다 여유롭고, 나에게 잘 맞았다. 사건을 마주한다는 재미도 있고 누군가의 선망이 대상이 된다는 것은 퍽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휴학 중인 학교에서 나는 많이 독특한 케이스였는데도 나름 홍보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졸업 전 취업한 경찰 공무원 선배라는 타이틀은 우리 대학에서나 과에서 특이한 일이었기에 취업난인 지금의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용됐던 것 같다. 여러모로 나쁘지 않았다. 어린나이였지만 다 이룬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오래가진 않았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앞으로의 목표가 없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난 평생을 진로를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그 고민은 나의 존재감, 자긍심, 자아성취 등 많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이러한 생각에도 관성이 있는지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경찰 일은 좋았지만 뭔가 심지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떤 경찰관이 될 것인가. 소위 경찰철학이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쯤 지나자 퇴사하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철학은 개뿔, 드라마틱한 사명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경찰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단지 현장에 던져놓고 너가 알아서 잘 해결하라는 식이다. 명확한 임무를 주지 않으면서 경찰로서 해야할 일을 요구받는다. 경찰로서 해야할 일이란 '추상'이 나를 짓눌렀다. 경찰철학 뿐만 아니라 역할에 대해서도 혼란이 온 것이다.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정의내려주지 않았다. 관련해서 공부도 해봤지만 오히려 '정의내리기 어렵다'라는 것이 정의라고 배우기도 했다. 경찰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답이 필요했다.


그 답이 있어야 심지 굳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 던져지면 어떻게든 일을 하기는 했지만, 경찰이 왜 필요하지 라는 의문이 드는 일들도 많았고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현장에도 답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경찰을 찾았다. 그들의 나에 대한 기대감만큼 나의 역할은 모호해져갔다.  경찰은 무슨 일이든 해야할 것 같았지만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어떤 경찰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경찰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서 경찰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100가지 현장에 대한 답은 100가지이다. 이런 추상적인 답만 나왔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구체적이지 않고 더 논리적이지 않구나. 경찰 정도의 조직이면 시스템이 매우 체계적일 줄 알았다. 이 환상이 더 실망감을 키웠던 것 같다.


취업하면 다 끝일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난 너무 생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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