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우울한 날이 왔다. 주차한 차 안에서 내릴 힘도 없어, 운전석에 앉은 채로 혼자 울먹거렸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집에 들어와서도 불도 키지 않은 채 멍하니 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쌓였나, 불꺼진 거실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바닥에 누워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한다. 나는 왜 우울한가.
헛짓거리임을 안다. 왜인지 알았으면 상황을 고쳤겠지. 감정은 혼란이고 나는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경험적으로 좋은 전략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일단 감정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우울감은 회사 상사의 쿠사리처럼 일상에 늘상 있는 일이란 것을 명심하고 적당한 처세술들을 기억해낸다. 그것만으로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 지금부터는 충분히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일단 이유를 찾는 짓부터 그만둔다. 그리고는 과거의 좋은 효과를 봤던 일들을 답습한다.
음악을 듣는다. 나는 히가시노 조의 <summer>를 들으면서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또는 외국힙합이나 팝을 듣는다. 가사가 없거나 무슨 뜻인지 모르는게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음악이 주는 분위기에만 집중한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 감정이 해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운전할 때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잠을 잔다. 지친 감정에 몸도 함께 지쳐있다. 샤워를 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면 그냥 잔다. 개인적으로 잠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굉장히 효과가 좋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다시 아름다워지고 내 일상은 흐름을 이어간다.
위 두 가지의 방법은 매우 간편하고 특별한 노력이 필요없다. 그래서인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 분위기에 집중하다보면 기존의 우울감이 더 커서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철학적인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만다. 잠을 자는 것도 비슷하다. 과학적으로 잠 자기 전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 감정이 깨는 순간 번뜩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잠이 안와서 오히려 잠드는게 더 스트레스 일수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좀더 노력이 들어가고 동적인 방법을 쓴다.
운동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의 정도에 따라서 산책 정도로 기분이 나아지기도 하지만 인터벌 러닝이나 강한 무산소 운동이 필요할 때도 있다. 운동을 하면 잡생각이 날아가거나 다른 곳에 신경이 쏠리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 된다. 그리고 뭔가 뿌듯함도 들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것 같다. 하기는 매우 싫지만 하고 나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론 운동이 하기 싫어서 항상 음악이나 잠에 밀린다. 이왕이면 쉬운 게 좋으니까.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순간은 부정적인 감정에게 반격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 같다. 운동처럼 강력한 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감정을 해소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 몰입의 순간엔 내 안에서 피가 빠르게 도는 기분이 들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내 스스로가 잡아먹어버린다. 우울한 주제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엔 우울한 내용을 쓰면 그 감정이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한데 역시나 그 감정에 집중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아서 그런 내용은 피한다. 확실히 이런 배제가 더 효과가 더 좋다.
위 두가지 방법의 단점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런 에너지를 애초에 처단한다. 완전히 감정에 잠식당해서 힘이 안나니까 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면 나는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보는 것처럼 그래도 에너지가 덜 필요한 일들을 해보기도 하는데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이젠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해진다.
약을 먹는다. 정식적으로 무슨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방법이다. 비습관성 수면유도제를 먹는다. 잠을 자는게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대책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선방이라고 생각한다. 약빨로 잠들고 나서 다시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음악듣기, 잠자기, 운동하기, 글쓰기, 약빨로 잠들기 등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이하는 개인적인 방법들이었다. 그래도 역시 제일 좋은 건 사전에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최소화 하는 좋으니까 말이다. 일단 안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는게 좋다. 정확히는 몇가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빼고는 신경을 끄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런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남의 sns는 잘 안본다. sns는 그냥 잘나온 사진 자랑용 겸 sns에 안 올려주면 섭섭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용이다. 최근에 회피한 상황은 승진이다. 승진공부 하기 싫은데 자꾸 주위에서 얘기해서 나는 안한다고 대놓고 얘기를 했고 남들 따라 샀던 책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나중에 법령 찾아볼 일 있으면 꺼내보는 용도로만 쓸 생각이다.
또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일로 나는 물멍을 좋아한다. 마음먹고 아쿠아리움을 가기도 하지만, 자연다큐를 보는 것도 은근히 도움이 되더라. 다음엔 코인세탁방에서 세탁기 물멍을 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꽤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요새 해리포터에 빠져있는데 해리포터도 챙겨가서 커피 마시면서 읽을 생각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세탁방 가기,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