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나는 주말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JTBC에서 하는 밴드 경연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이다. 경연의 방식은 이렇다. 참가자들은 각자 심사위원과 다른 참가자들에게 자기 강점을 어필한다, 개중 프로듀싱 능력이 강점인 참가자들은 심사 위원에게서 부여받은 권한으로 구성원을 고른다. 그렇게 경연을 한 차례 하고 나면 기존 밴드는 해체되고 다시 새로운 밴드를 구성한다.
어필 단계가 끝나고 본격적인 경연을 하기 위해 팀을 짤 때였다. 첫 번째 제비를 뽑아 선택권이 많은 리더(조원상)가 어쿠스틱 기타만 세 명을 골라 가지 않겠는가. 의아했다. 1번이면 선택권이 많은데 대체 왜? 곧 그들의 연주가 시작됐고 나는 말 그대로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들이 연주를 마쳤을 때 나의 ‘왜?’는 ‘아!’로 바뀌어 있었다. 당연한 이유겠지만 연주가 멋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돌려보았고, 그사이 느낀 건 리더가 참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기타만 세 명을 뽑은 것은 큰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원하는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음악이라는 예술의 특성상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을 선사해야 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베이스와 기타 셋이 그런 연주를 하는 것 자체가 드라마이기도 했다. 리더가 똑똑했던 팀이 하나 더 있었다. 자이로팀이다. 그는 순서상 마지막에 남은 사람을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조원상팀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최악인 상황에서 ‘보컬만 네 명일 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보컬이 네 명씩이나 있을 때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재빨리 찾아 그것이 돋보일 수 있는 최상의 상태로 내보였다.
2라운드에서는 1라운드와 다른 밴드가 구성된다. 또 처음부터 맞춰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가슴 뛰게 한다는 게 시청자 입장에선 보인다. 항상 새로운 팀원을 만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의 모습은 요즘 기업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애자일 조직(Agile, 필요에 따라 작은 단위로 팀이 구성되고 흩어지며 단기간에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는 조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프로젝트 단위로 팀이 뭉치고 꺠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까. 아마 나의 위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고작 예능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팀이란 무엇인가,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고, 구성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그 일을 함께 할 팀원 각자의 역량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다들 한 목소리만 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도 있어야 하며, 어떤 순간만큼은 그 팀원이 200프로 돋보이는 순간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팀원은 각자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며, 특별히 발휘해야 할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리더의 지시를 따르며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순간에 충실해야 하지만 내가 얘보다 잘났다고 우길 필요가 없다. 그러려면 밴드가 아니라 다시 혼자 연주하는 것이 맞다. 조원상 팀의 세 기타 연주자들은 각자 기타 줄만 튕겼다 하면 상을 받는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아직은 경쟁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 열아홉 살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 조차 자기 독주 파트에서는 현란한 연주를 뽐내다가도 합주를 할 때는 충실히 한 목소리를 냈다.
1라운드 조원상 팀 같은 경우에는 다들 너무 잘해서 상호 보완을 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떤 팀은 팀원끼리 누가 누구를 받치고 하는 식으로 상호 보완을 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팀이 모였을 때 만약 누군가 어떤 것을 생각만큼 해내지 못한다면 ‘왜 저 사람은 이것도 못 하는가’가 아니라 다른 것을 잘하러 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잘한다고 남이 잘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인데, 가끔은 회사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내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투덜거리는 모습 말이다. 그 사람이 팀을 옮기면 누구보다 일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제 프리랜서의 시대가 온다는 등 이래저래 ‘우리는 하나’라는 기치를 내 거는 것이 구식이 되어버린 시대이지만, 분명히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어떤 것들은 함께 했을 때 더 좋은 결과 값을 내기도 한다. 함께 나아가는 힘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크다. 당신은 어떤 밴드에 속해 있는가? 거기서 맡은 악기는 무엇이며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 동료들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리더는 원하는 것이 분명한가? 지금 팀이 깨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나는 어느 순간에나 내 실력만을 뽐내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해 있는 밴드와 내 자신을 재정비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