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세계는 계속 변한다.
초등학생인 딸이 푹 빠졌던 만화가 ‘수학도둑’이던 때가 있다.
수학도둑을 시작으로 딸의 판타지 세계가 펼쳐졌다. 하필 이었을까 아니면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처음 접하게 된 학습만화의 설정 영향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쓰기 시작한 딸은 학교 글똥 누기 시간에도 열심히 판타지 소설을 썼다. 만화도 깨작 그렸는데 주인공들은 다 마법을 부렸다. 마법사가 아니다? 그럼 전지전능 ‘신’이다. 판타지를 흥미로워하길래 도움이 될까 싶어 ‘반지의제왕’을 읽어보라 줬더니 조금 읽다 포기했다. (사실 어른도 읽긴 힘들다. 방대한 설정에 등장인물도 너무 많다. 나도 호빗만 읽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책은 내려놨다.
남편은 아이의 취향에 불만을 드러냈다. 아이의 상상의 세계가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싫다는 거다. 갈수록 4차원이 되어간다며 아이가 보는 책에 굉장히 거부감을 가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지만 딸이 없는 자리에선 나에게 만화책을 못 보게 하라며 어깃장을 놨다. 뭘 저 정도 가지고? 어차피 다 한 때인데. 결국 타협을 본 게 도서관 대여할 때 만화책은 1회 한 권만 하기로 정했다. 추가로 글밥책도 꼭 1권 이상 빌려야 한다. 아이들도 이 규칙을 납득했고, 100권이 넘어가는 시리즈를 다 보고 나서야 수학도둑 사랑은 끝났다. 물론 아직까지 아이들은 도서관 갈 때마다 다른 시리즈의 학습만화를 각자 한 권씩 빌려오고 있다.
남편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의 세계는 계속 변했다. 갑자기 명탐정을 코난을 보고 싶다며 책을 사달라 했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사게 했다. 종이책이 쌓이는 게 싫고, 만화책은 보기 전에 단계가 더 있어야 손이 덜 가니까. 코난을 열심히 보는가 싶더니, 아빠와 셋이 머리 맞대고 넷플릭스에서 스파이패밀리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대에서 근대와 현대로 넘어왔구나. 더 이상 아이는 엘프나 정령을 찾지 않았다. 일본 애니를 보기 시작하자 일본어 대사를 막 따라 한다.
나도 우리 아이들 나이쯤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봤다. 나이차가 나는 오빠들의 소장품인 500원짜리 손바닥만 한 만화책이나 갓 창간한 점프 챔프 등등이 항상 집에 쌓여있었고, 서울 가서 공수해 온 자막도 없는 지브리 애니 비디오테이프 등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자막이 없는데 어찌 그리 열심히 봤는지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달달 외웠고, 중학생 때쯤에는 일본어를 꽤 많이 알아들었다. 자격증이 필요해서 일본어능력시험을 본 건 그 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었지만, 그냥 처음부터 1급을 보고 바로 땄다. 종종 왜 일본어를 하냐고 물어오면, “그냥 일본어를 많이 들어서요.”라고 답했다. 나 때는 일본문화에 빠지면 오타쿠 취급이었고, 그래서 음지의 영역에서 서로 교류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재밌게도 일본어 능력자가 됐다.
근대로 넘어온 딸이 나에게 일본어 단어를 물어온다.
“엄마, 아까 그 애니에서 나왔던 암살자가 일본어로 뭐라 했지?”
“......고로시야?”
“아, 맞다! 고로시야.”
현실세계에서는 암살자라는 말 거의 쓸 일이 없다. 이미 겪어 본 엄마는 안다. 일본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면 안 된다는 것을. “연필 주워줄까?” 보다 “이 연필이 네놈 것이냐?”가 더 자연스러운 게 일본만화 설정이라서. 그래도 나는 그다지 아이가 보는 걸 막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보는 건 다 한 때고, 아이의 세계는 계속 바뀌니까. 사실 이미 현대를 넘어서 미래로 가고 있다. 지금은 아이가 만든 주인공이 어느 우주의 별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