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제 Aug 31. 2023

- 학교 가면 -

밥 많이 먹고 와


가계 돈관리를 담당하는 남편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엑셀 시트를 열고 한숨을 쉰다. 벌이는 빤한데 아무리 아껴 써도 물가가 너무 올라 매달 가계부에 구멍이 나는 탓이다.

그렇다.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중이다. 우리 가족의 먹성이 좋다 보니 반찬가짓수를 줄여봐도 생활비는 계속 늘어난다. 세끼를 집에서 다 챙겨야 하는 방학이 두려워질 수밖에. 학교에서 먹는 점심 한 끼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여름방학은 2주 정도로 굉장히 짧아 다른 때보다 부담은 덜 했다. 겨울방학때 할 학교 교실 석면철거공사 덕분이다. 그래봐야 조삼모사지만.


개학을 하루 앞둔 날 밤. 침대에서 책 읽으며 잘 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남편이 말을 건다. 어느 집은 아빠가 침대 머리맡 책 읽기를 해주기도 하고, 함께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남편은 그 정도로 살갑지는 않다. 그래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일부러 가서 치근댄다.

개학인 걸 뻔히 알면서도 “내일 뭐 해?” 하고 묻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연하게 “학교 가지”하고 대답하는 아이들. 정말 시답잖게 이어지는 “학교 가서 뭐 해?”라는 질문.

아니 학교를 안 다녀봤나 학교 가서 뭐 하냐니. 소풍 가는 게 아닌데.

그래도 아이들은 대답을 이어간다.


“공부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고.”


“밥은 안 먹어?”


“먹지, 급식.”


그 말은 들은 아빠가 대뜸 말한다.


“급식 많이 먹어. 두 그릇 먹어.”


그게 본론이었구나? 내가 애들 밥 챙기기 힘들다 하면 농담으로 굶기라더니 학교 가서 많이 먹고 오란다.


“이미 그렇게 먹는데도 집에 오면 배고파.”


성장기 먹성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한 달에 1센티 이상은 꾸준히 크고 있는 중이라 에너지가 부족하다.


“집에서 적게 먹고 학교 가서 많이 먹고 오라고.”


생활비가 늘어가는 불안을 애들한테 투덜대며 푸는 남편. 말은 저리 하면서도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면 자기 먹던 것도 다 내어주는 아빠다. 아이들도 아빠가 그냥 하는 소리라는 걸 아니까 그저 웃는다.

그나저나 애들은 크는데 월급은 제자리라 고민만 깊어가는 매일이다.


이전 13화 - 딸의 세계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