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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y 15. 2016

goodbye sadness

  내가 선배로서 좋아한 K는 나와 연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2살 위 오빠였다. 내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K는 내게 물었다. 어떤 고백을 받았느냐고.


  "같이 밥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이 말했어. 만나보자고."


나는 가감없이 그 날을 전달한다. 실제로 우리는 썸이라고 하는 간지러운 기간을 짧게 지내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전혀 안면이 없던 사이였는데 우연히 만나서 운명이 된 셈이다. 함께 수목원에 가서 데이트를 한 뒤 근처 맛집에서 대나무 정식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차들은 쌩쌩달리고, 우리는 나무가 우거진 인도를 걸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을 잡고 손목을 잡고 팔짱을 끼면서,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을 설렘을 만끽하고 있었다.


  -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자.

  - 진지하게 만나는 건 뭐예요?

  - 음... 사귀자는 거지.


  바보같지만 실제 대화였다. 나의 이름을 부르고, 오래 아무말도 하지 않길래 나는 고백이 찾아올 타이밍임을 깨달았었다. 그리고 몇 발짝 더 걷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사이가 더 엉키도록, 더 무한해지도록 동의한 것이다.


  K는, 그 고백에 대해 일반적이지만 가장 좋은 말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K에게 되묻는다. 헤어진지 얼마 안 된 엑스걸프렌드에게 어떻게 고백을 했는지.


  "나는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어. 이를테면 너와 내가 아무런 사이가 아닌 상태에서 난 네게 아무말 없이 내일 연락을 안 할 수 있어. 그런데 사귄다는 건 관계에 의무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지.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 내일 너에게 연락을 하겠다는 약속. 사귄다는 건 관계에 책임이 생기는 것이라고."


  그 날은 K가 유난히 더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그런 고백을 받았다면 가슴이 참 벅찼겠구나 생각했다.


  K에 의하면 나는 책임이 생긴 관계가 되었다. 애인의 자리가 다시 채워진 것은 아직 한달이 안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실 나는 공허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공허하다.


  내 애인은 현재 나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나는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 간신히 한자리 수에 턱을 걸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외롭지 않으려고 시작한 연애인데, 곁에 누가 있다는 사실이 혼자 있을때면 나를 더 고독하게 한다. 왜 나는 누가 함께 있음에도 외로운가.


  그가 내게 미안해 할 수록 나는 왠지 두렵다. 나를 기다리게 하던 예전의 그 사람과 겹쳐지는 현재의 애인이. 아직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 사이에 사랑보다도 미안함이 더 쌓여 그 사람이 지레 겁먹고 나를 떠나갈까봐. 나는 바보같이 내게 찾아 온 이 외로움이, 공허함이, 잠시 지나가는 것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 감정들에 잘 적응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연애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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