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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20. 2019

너는 어떻게 날 잊었는지 가르쳐줘

나는 유독 예민한 사람이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이름 붙이지 못할 감정이 엉켜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해가 푸른색으로 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괜히 쓸쓸해지곤 했다. 그래서 바람이 악을 쓰며 부는 소리에 누가 우는구나 싶어 가슴 시리고, 당신이 좋아하던 커피냄새를 만나면 마음에 멀미가 났다.


당신과 헤어지고 헤이즐넛 향과 마주할때마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당신이 떠올랐다.


당신과의 처음에, 잠시간 순간에, 소중했던 기억에, 이별에는 같은 향이 배어있었다. 그래서 문득 들어선 카페에 헤이즐넛 향이 자욱하면 종종 아련해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당신은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다툼 후에 눈물 흘리는 나를 미동없이 바라볼 만큼. "또 우냐"는 말을 내뱉을 만큼. 무심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당신이 나에게 무심했던 이유는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였던가.


연애 초기에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기억했다. 내 컨디션이 몇 시에 가장 좋은지, 무슨 음식을 먹을 때 돌아가신 아빠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꽃말을 기억하고 꽃다발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러나 연애가 종말을 맞을 때 즈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남자가 됐다.


이별하는 날.


아무 대화 없이 카페로 와 앉은 우리. 당신은 이내 카운터에서 헤이즐넛 두 잔을 받아왔다.


내 생일을 잊은 당신에게 서운하지 않았었다. 뒤늦게 챙겨준 꽃 한송이에 감격했었다. 기념일이 무슨 대수냐며 1년, 2년... 새삼스럽지 않아하던 당신임에도 괜찮았다. 나는 처음이지만, 당신에게는 처음이 아닌 것들에 담담했다.


그러나 내 몫으로 커피 한 잔이 놓였을 때... 그 때는 어찌나 서럽던지.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 .......


당신은 힐끗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고 핸드폰에 시선을 꽂았다. 내가 갑자기 울어도 넌 이유가 궁금하지 않구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우리 그만하자.

- ...왜 또 그래?


내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미동없는 당신의 모습에 순간 질려버렸다.

이 순간까지도 무심하구나, 싶어서.


나는 커피잔을 들어 반정도를 털어 마셨다. 가득 응축된 헤이즐넛의 향은 생각처럼 달지 않았다.


- 나 커피 못 마셔. 카페인 알레르기가 있거든.


당신을 처음 만난 카페에서, 처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그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이었지?


- 한 모금만 마셔도 온 몸이 빨갛게 부어올라.

- .......

- 너.. 그걸 잊어?


유난히 카페인에 예민해서 커피맛 사탕도 따져먹는 걸 알면서. 알았으면서.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니.


헤어진 날은 집에 돌아와 온 몸을 긁었던 생각만 난다. 잠이 오질 않아 뜬눈으로 몸을 긁으며 밤을 샜다. 목구멍에서는 내내 헤이즐넛 향이 났다. 한참이 지나서야 지독한 향기에서 벗어났다.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알레르기 사실을 밝혔을 때, 당신은 커피 냄새는 괜찮냐고 물었다. 자신은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커피를 마시면 꼭 물로 가글이라도 하고 입을 맞췄다. 비타민 음료를 하나 내밀어도 카페인이 들어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카페인이 전혀 없는 녹차나 홍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나 그런 사랑을 받았었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알레르기를 뛰어넘는, 헤이즐넛 향 트라우마. 당신이 떠오르고야 마는 잔인한 순간들.


결국은 무심해져버리고야 마는 연애의 존재.


그래서 당신은 나를 잊기 수월했을까? 나는 영 어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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