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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r 26. 2020

우리는 누군가의 썸머였다

*누군가에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글입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속 주인공 썸머는 흔히 말하는 나쁜여자로 지칭된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썸머’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매칭되곤 할 것이다. 영화 속 썸머는, 1차원 적 관점에서 볼 때 한 남자의 순정을 짓밟은 또는 순수한 연애와는 크게 멀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같은 영화를 2번 이상 보거나 시간이 흘러 영화를 곱씹었을 때, 그제야 썸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들 한다.


남자주인공 ‘톰’은 전형적인 첫사랑을 하는 인물이다. 열에 들뜨고, 감정에 서툴러 상대방보다 자신을 우선으로 두고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신파극에서나 들을 법한 대사쯤 될 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는 거야.  


톰은 자신의 사랑에 취해 있다. 연애를 하는 저의 뜨거움에 취해 결과적으로 썸머를 내버려두고, 썸머에게서 겉돌고, 썸머를 외롭게 했다.     


그럼에도 썸머를 운명으로 생각했고,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녀를 늘 미래에 두었다.     


톰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섬세하지 않았을 뿐, 상처를 주고자 한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 반해 썸머는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몇 차례의 연애를 거친 능숙하고 초연한 인물이다. ㅡ톰은 그런 면에 더욱 끌렸을 것...ㅡ 썸머는 엑스보이프렌즈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톰과 연애했고, 최선을 다했으며, 지쳤고, 결국 헤어졌다.     


태초에 나는 누군가에게 톰이었다.     


종소리라도 울리듯 누군가에게 진한 운명을 느꼈다. 바야흐로 세상에 그 사람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의 24시간과 감성과 정서가 모두 그를 향했었다. 톰처럼, 영원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나의 스무살.     


뜨거웠던 연애는 나를 달아오르게 했으나, 그만큼 쉽게 그 온도에 마음을 데이곤 했다. 그를 향한 모든 것이 시샘의 대상이었다. 그가 눈길주는 모두에게, 사물이나 반려동물에게도 눈물이 핑 돌만큼 질투가 났다.     


그의 지난 연애사를 듣고 난 밤이면 서글퍼졌다. 내가 모르는 순간을 알고 있을 다른 이가 못 견디게 부러웠던 것이다.     


아무것도 재지 못한 채로 나를 탈탈털어 뜨거운 연애의 땔감으로 밀어 넣었다. 지독한 연애였다.     


나는 서툴렀고, 싸우고 화해하는 지겨운 반복이 죽음처럼 힘겨웠다.     


목을 빼고 저만 기다리고 있는 나를, 20대 초반이었던 그도 견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한 수순으로 이별을 했고 몇 차례 다시 만났으나 우리는 결국 과거의 연인이 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그 사람은 내게 연락을 해왔더랜다. 셀 수 없이, 끈질기게도 왔다.     


너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더라.     


그런 상투적인 대사를 하며, 자신의 연애 태도를 반성했다.    


그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던가,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를 떠올리면 마음 깊은 곳이 종종 저릿해질 뿐.

 

나는 몇 번이나 모질게 그를 밀어내다가, 결국 번호를 바꾸고 SNS를 차단했다. 더는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거니와, 그 때의 나는 나 조차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미련하리만큼 열성적인 사랑은, 내가 온 생애를 돌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에게 나는 톰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이 반짝반짝거렸다.     


시간이 모두 지나버린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나는 너를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다. 그 뜨거운 연애의 전 과정을 벅차도록 사랑했다.     


그 연애의 불씨가 사그라들고, 타다 남은 잿더미 위로 뽀얀 새살이 돋아났을 때 비로소 나는 영화 속 성장한 톰이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조금 더 현명해졌다. 어떻게 보면 영악해진 셈이다. 상대방의 감정만큼 내 감정을 내놓았다. 상대방이 물러나는 기색이면 늘 마음으로 먼저 관계를 정리했다. 그러고 나자 이별이 조금 덜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썸머이기도 했다.


내가 첫사랑인 남자의 속은 투명하게 모두 보였다.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미치게 좋아하는구나. 그 일관된 사랑이 귀엽고, 서툶이 사랑스러웠던 시간.     


그 남자와의 연애도 끝이 났다. 이별이 왔을 때 그는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나에게는 봄처럼 가을처럼 가벼웠던 연애가, 그 남자에게는 한여름의 독감처럼 지독하게 다녀갔음을 알았다.     


시간을 건너 나는 틈틈이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재회를 하고 나서야 내가 그에게 썸머였구나, 깨달았다.     


자신의 모든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내던 사람. 그리고 나에게 마음껏 기대고자 했던 사람.     


그 사람은 흐른 나이에 맞게 적당히 능글맞고, 적당히 단단하게 자라났다.     


나는 그를 반가워하려다가, 어쩐지 차가운 기색에 주춤했다.     


몸 어딘가에 깨끗지 않게 아문 흉터처럼 그 사람에게 나는 어쩌면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나는 그를 몇 번째 연애상대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겐 내가 첫사랑이었던 것처럼.     


나는 너에 대해 좋은 기억뿐이었는데, 너에겐 내가 오롯이 나쁜 기억일 수 있겠다는 사실이 나를 수그러들게 했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다. 단지 내가 그보다 조금 덜 사랑했을 뿐이었다는 것.


누군가에게 썸머가 되는 일은 사실 엄청 잔인한 행동이 아니다. 무심결에, 서로의 다른 온도에 그렇게 되곤 하는 것.     


나의 톰이었던, 나의 썸머였던 모든 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톰이었고, 썸머였을 나를 생각한다. 맹렬한 온도로 만나 함께 사랑하는 과정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여전히 가늠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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