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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r 27. 2020

당신과 나는 왜 헤어졌을까

이별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사랑,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하기도 했다

이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 우리는 어떤 헤어짐을 겪은 것일까.     


사랑했던 사람과 멀어지던 밤을 떠올린다. 서서히 잦아드는 연락과 두 사람 사이를 미묘하게 가로지르는 권태로움, 누군가의 무신경함과 누군가의 식어버림으로 결국 종결을 향하게 되는 관계를 떠올린다.     


나에게도 수많은 사랑만큼이나 수많은 이별이 다녀갔다. 지독한 연애였음에도, 그 끝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뜨겁게 사랑했음은 생경한데 우리가 왜 헤어졌었더라? 곱씹어봐도 떠오르지가 않는.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번호를 매길 수 있는 언젠가 즈음의 연애가 그러했다.     


나는 어렸고, 그도 어렸다. 우리는 서로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사랑했었다. 끝도 없이 추를 달아 보는 연애. 일정의 무게를 넘기지 않기로 약속했던 연애. 그럼으로써 상처받지 않고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어리석은 연애였다.     


‘그런 연애’를 해보니 깨달은 사실은, 나는 ‘그런 연애’에 영 소질과 흥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1년을 만난 그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내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조용히 내 뜻을 따랐다. 그리고 그 후로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때마침 내가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전화번호를 함께 바꿨고 마침 이사까지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 없이는 서로를 다시 찾을 수 없을 연애를 했다. 서로를 있게 해주던 전화번호를 지우고 나자 우리는 서로의 존재 여부 조차 알 수 없어졌다.     


그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이름만을 마음에 품은 채로 오랜 시간을 건넜다.     


나는 참 간사한 사람. 술을 마신 밤이면 여지없이 그가 떠올랐다.     


다정하고 무심한 그 사람. 단단하고 한없이 무른 그 사람. 단호한 그 사람. 그러나 늘 토라진 내 마음을 먼저 달래주던 그 사람. 죽어도 떠오르지 않는 연락처를 아쉬워하며 그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찾아지지도 않던 그 사람.     


헤어지고 꼬박 몇 해가 흘러서야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정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생일이 언제였던지, 형제 관계가 어땠는지, 어떤 목소리였는지 모두 잊었다. 게중에 일부는 애초에 몰랐던 것일지도 몰랐다. 끝없이 마음을 저울질 하느라고 사랑을 받고 싶어만 하느라고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정말 없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의 기억은 모두 좋은 것. 온통 따뜻하고 몽실한 감각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를 잊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그 때 해주지 못한 것, 해줬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말. 단편적인 기억은 내게 짙은 미련을 남겼다.     


만나는 동안은 몰랐던 그 사랑의 깊은 속을 긴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아주 우연히 그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할까. 여전히 나를 미워할까. 어쩌면 과거의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을 사람을 찾으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리기도 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그 때는 한 줌 같던 사랑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버린 사랑. 나는 과연 이를 사랑으로 일컬어도 될지 스스로를 검열했다. 과연 내가 자격이 있던가. 애초에 그 사람을 그리워할 자격도 없었을지 몰랐다.     


과거의 연인이 끌고 온 추억과 감정은 태산 같아서 나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 빙글빙글 도는 하루를 살았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밤이 이어졌다. 그 밤의 끝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사람임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했던 목소리. 울컥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대학생이던 서로는 사회인이 되었다. 그 사람은 여유를 아는 성인으로 반듯하게 자랐다.     


나의 존재에 대해 일말의 반감도 없이 반가움만을 말할 수 있는 어른. 정말, 그 사람은 나를 반가워했다. 잊고 지냈던 졸업앨범이라도 들여다 본 듯.     


나에게 그러하듯 당신에게도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애틋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정 나만의 오만.     


나는 어쩌면 그가 여전히 나를 미워하고 있길 바랐다. 그럴 수 없는 시간이 흘렀음을 알면서도.     


담백한 사람. 그 사람은 너무 쉽게 만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지고 얼마 간 나를 그리워했었다고, 나를 찾아보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너무 가감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부러웠다.     


매사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은 우리의 연애에도 아쉬움이 없다. 내가 마음에 무게를 궁리하는 동안 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나도 너를 생각했어. 매년 봄이 오면  즈음이 너의 생일이었지... 했어.

그 사람의 목소리는 모든 순간을 건너온 듯 시원스러웠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당당함, 일종의 그것이 부러워졌다.    

 

더 어린 날의 나는, 누군가를 더 뜨겁게 사랑했었다. 그럼으로 아무런 미련 없이 그 사랑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초연함이 그로 인해 비롯됨을 알기에 만나자는 그의 말에 그러자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재는 사람. 무조건적인 사랑은 더이상 어려운 사람.     


당신 앞에서 또 부끄러워지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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