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이 주는 안온함에 대하여
얼마 전 아이들 통장 적금이 만기되어 오랜만에 은행에 방문했다. 은행거래의 디지털화가 된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자녀의 통장 개설과 해지는 직접 방문해야 한다.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 등 증빙서류를 발급하는 건 다행히 구청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 발급이 가능하다.
간만에 바깥바람도 쐴겸 지점에 도착하니 역시 한산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아이의 적금을 해지하고 거치식 예금과 자유적금을 각가 개설하려하니 총 4개의 통장을 만드는 셈이 됐고,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약 1시간을 지점에 머물고 업무가 마무리 될 즈음 직원들이 사내에서 쓰는 열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의 캐릭터 굿즈로 만든 것 같은 돌고래 모양의 열쇠고리다. 크기도 모양도 동글동글 계란처럼 생긴 돌고래 열쇠고리를 보니 순간 '아, 귀엽다.만져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직원이 챙겨주는 생필품 사은품을 받아들고 나서 나는 용기내어 질문을 던졌다.
"저기, 아까 돌고래 모양 열쇠고리는 받을 수 없나요?"
담당직원이 신입행원이라 그런지 고맙게도 열쇠고리 한 개를 가져다 줬다.
"아이가 두명인데... 죄송하지만 한 개밖에 없어서요."
"아니에요~ 고맙습니다ㅎㅎ"
내심 욕심이 났지만 매뉴얼에도 없는 요구에 친히 응대해 준 직원에게 더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었다.
구지 쓰지도 않을 열쇠고리를 나는 왜 갖고 싶어했을까?
같은 돌고래 캐릭터는 은행 앱에 들어가면 수두룩하게 많이 볼 수 있다.
캡쳐해서 나만의 이미지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사라진 물성의 안온함이 그리운 요즘, 손에 잡히는 촉감과
소유의 느낌이 주는 만족감과 안도감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어디선가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최근 대학병원들도 병원 앱을 통해 진료 예약이나 결제 시스템 등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분명 편리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이 또한 ‘온리 디지털(Only digital)’보다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더 좋았던 경험이 있다.
진료 예약을 하면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일시와 장소 등 사전안내문, 코로나 관련 문진표 등을 보내주는 시스템이 일반적인데, 한 병원은 이런 서비스 외에도 직접 상담원이 전화를 해 통화로 간단한 질문과 준비사항을 알려줘서 안심할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서비스지만, 병원이 좀 더 환자를 생각해 주는 것 같은 신뢰감이 들었다.
‘인생네컷’은 스티커 사진촬영 및 인화가 가능한 곳이다. 과거 학창시절 추억의 스티커사진이 연상되는 형태의 비즈니스인 것 같지만 요즘 소비자에 맞게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 됐다. 친구나 연인끼리 셀카를 찍고 마치 카툰 포맷처럼 4컷의 사진을 한 장으로 인화에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어 1020세대들 사이에 유행이라고 한다.여기에서 끝이 아니고 디지털 파일과 촬영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도 가질 수 있게 돼 있다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스마트한 콜라보 사례인것 같다.
70대이신 부모님 세대는 매일의 뉴스를 아직 종이신문을 통해 보신다. 집에 계시면 하루종일 TV 뉴스를 자주 틀어 놓으셔서 구지 신문을 안보셔도 될 것 같지만 아침 일찍 받아보는 신문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즐기시는 것 같다. 종이신문은 비록 한정된 뉴스만을 담고 있지만, 디지털 뉴스에서는 얻지 못하는 커다란 사진과 헤드라인들이 있어 어찌보면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큐레이션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부모님의 경우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로 넘어오신 케이스라, 더더욱 디지털에 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실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더욱 가속페달을 밟게 된 디지털 세상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 보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는 상황들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것 아닐까. 그것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는 느낄수 없는 아날로그의 온기와도 같다. 적어도 나와 같은 40대 이상의 소비자들에게는 비슷한 정서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이나 서비스가 이러한 취향에 맞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콜라보로 개발된다면 좋을 것 같다.
코로나와 오미크론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걷힐 때 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