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전성기에 쉼표를 찍다
오랫동안 쓰던 S 통신사에서 알뜰폰 통신사로 바꾸게 됐다. 첫번째 이유는 월 5만원대 요금제가 1만원대로 저렴해 진다고 해서 가계지출에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가끔 통화품질이 안좋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초연결 시대를 사는 마당에 문제될 일은 아니다.
두번째 이유는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오래된 휴대폰 광고카피처럼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컨셉으로 스마트폰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생각이니,너무 넉넉한 휴대폰 요금제는 불필요했다.
원 통신사에서 해지문자가 도착했는데, 의외로 감성적이라 시선이 머물렀다. 광고성 문자와 카톡이 난무하는 시대에 문자메세지를 제대로 읽기조차 하기 힘든데, 이번 문자는 읽고 또 한번 읽었다.
10년도 아니고 3,619일이라니… 10년에서 한달 빠지는 시간동안 최소 2년에 한번 스마트폰을 바꾼것 같으니 최소 4번 이상 다른 휴대폰을 썼을텐데, 그 시간들을 불현듯 돌이켜보게 됐다.
둘째의 100일 이후 날짜를 세어가며 살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3,619일이라는 숫자를 되새기면서 아닌 걸 알지만 마치 나를 위해 날짜를 세어주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흔히 떠오르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의 통보 스타일의 메세지가 아니라, 너무 길지도 너무 성의없이 짧지도 않은 길이에 진심을 담은 것 같은 형태의 메세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당 부서의 상급자라면 그냥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나요”가 아니라 이런 해지문자의 감성적 템플릿을 만든 직원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문장의 힘을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했다
스마트폰은 지난 3,619일동안 실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진과 영상촬영, 회사업무를 보며 들여다본 인터넷 기사들과 수많은 이들과 주고받던 메세지들일 것이다. 회사와 집에서 끄적였던 메모들, 온라인 쇼핑과 결제에 뱅킹서비스, SNS까지 디지털라이프의 시작부터 최근들어 매너리즘에 빠지기 까지의 하루하루장면들이 스마트폰과 함께 고스란히 축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의 본질인 '통화'기능이 아닌 컴퓨터나 인터넷, 카메라 대용으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가장 강조한 핵심은 바로 '통화기능을 더한 혁신적인 아이팟'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진화하면서 디지털 라이프를 개선해 왔지만, 또한 의도치 않게 인류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디톡스를 해야겠다는 각성을 한다. 칼 뉴포트의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제시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디지털 정돈과정
1.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 기술에서 벗어나는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
2. 이 기간에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활동과 행동을 탐구하고 재발견한다.
3. 이 기간이 끝날 때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차적 기술들을 하나씩 다시 쓰기 시작한다.각 기술이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파악한다.
내 경우 휴대폰에 있는 수많은 어플들 중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지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대폰으로 해야하는 일'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 최대한 줄여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꽤 많았다.
먼저 기본 생활을 위해 장보기용 쇼핑앱, 배달앱, 운전시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지도,지하철,버스 앱 등은 필수다. 아이들 학교와 소통을 위한 알리미 앱, 자녀 스마트폰 관리 앱 등 교육활동도 스마트폰으로 할 수 밖에 없다. 금융과 뱅킹, 멤버십 포인트 앱 등 경제활동도 포함된다. 그리하여 기본생활과 경제,교육에 관련된 앱들이 스마트폰의 첫번째 화면에 정렬되었다.
여기에 온라인쇼핑을 위한 포털사이트, 문화생활을 위한 OTT서비스, 유튜브도 남겨두었지만, 두번째 화면으로 이동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SNS의 경우 세번째 화면으로 배치했다. SNS는 나의 컨텐츠를 발행할 때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제한하고,다른 컨텐츠를 모니터링 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노트북으로 하기로 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는 휴대기기를 단일 용도로만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2008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던 프레드 스터츠먼은 논문 작성 중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딴짓을 하는바람에 애를 먹었다. 결국 그가 찾아낸 해결책은 '와이파이가 안되는' 커피숍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었고, 그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사이트 접속을 막는 프로그램 '프리덤(Freedom)'을 만들었다. (중략)
인터넷을 차단하는 방식(프리덤 같은 프로그램 등)에 저항하는 논리의 최대 수혜자는 디지털 주의경제다.디지털 주의 경제에 저항하고 싶다면 당신의 노트북, 태블릿, 휴대전화 같은 기기를 한번에 한 가지 용도로만 활용해야 한다.그러려면 당신의 주의를 빼앗아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의 앱이나 사이트에 들어가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주의 경제(Attention Economy)'는 소비자의 주의를 끈 다음 광고주들에게 팔아서 돈을 버는 업종을 말한다.)
이로써 나는 지난 10여년의 스마트폰 전성기에 쉼표를 찍게 됐다. 앞으로도 문헌과 정보를 참고하며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면서 나만의 디지털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해 나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