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넓혀라!(1)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군대 저녁점호 자투리 시간을 할애해서 읽어보자고 펼쳐본 이 책을 약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 오늘 완독 하였다.
한 챕터씩 짧게 짧게 읽어서 그런지 더욱 감칠맛이 난 것 같다.
가볍게 읽으려 한 나의 작전이 아주 통쾌하게 통한 것 같다.
Check point
세계를 매우 극단적으로 추상화하면 궁극에 가서 세계는 둘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마치 시간을 고도로 추상화해서 네 개의 계절로 구분하고,
공간을 고도로 추상화해서 다섯 개의 대륙으로 나누는 것과 같다.
잊고 있었다.
구분된 네 개의 계절, 다섯 개의 대륙은 그냥 누군가가 추상화해 놓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내 삶 어딘가에 정말 많은 추상된 허상들이 사실인 것 마냥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놀라움을 즐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 순수 이성의 한계를 밝힌다는 것
실천이상비판 - 실천이상의 한계를 밝힌다는 것
판단력비판 - 아름다움, 미에 대한 것으로, 미학을 제시
내가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땐
칸트의 비판 시리즈를 읽어 본 후였으면 좋겠다.
지금으로서는 순수이성비판에 흥미가 생긴다.
순수 이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호기심과
그 단어에 한계를 밝힌다는 모험적인 말이 구미를 당기게 한다.
덕은 규정하기 애매하지만 '이상을 실현하는 인격적 능력' 정도로 생각하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적 능력은 다소 진부하지만 배려심인 것 같다.
배려라는 능력은 진부한 만큼 지금 사회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느낌이다.
왜냐면 척할 수 있으니깐, 배려하는 척, 위하는 척.
요즘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능력으로는 긍정하는 능력, 매 순간 유머를 잃지 않는 능력 등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들은 관계적 모임에서 찬양받는다.
배려는 이것들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다.
배려하는 이들은 관계 속에서 한 명의 주연이 되지 않고 여러 명의 조연이 되며 엄청난 체력을 뽐낸다.
난 가끔 그들의 체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
.
.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답변인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이 빌 때마다 이상적인 인격적 능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은 진실됨이었다.
진실은 거짓을 전제하여하는 말인데 거짓되지 않음이 진실됨이 될 수는 없는 부분에서 진실됨의 가치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감출 수 있는 것과 감추지 않는 것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난 아주 예전부터 말하는 주체가 나던지 타인이던지 간에 위선적인 느낌이라던가 가식적인 느낌을 받으면 혐스러웠다.
문제는 그 꾸며진 행위의 본질이 순결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그것은 피 흘리는 노력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난 그것이 고통스럽다.
그만큼 갖고 싶은 인격적 능력이었다.
다만 이런 식이면 타고나지 않은 내가 이 인격을 갖기는 불가능하기에 난 이 타고난 인격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내 악한 본질에 진실함을 투과하여 꾸밈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즉,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적 능력은 자신을 감추지 않는 진실됨에 있다고 생각한다.
악은 악으로 표현할 줄 아는 진실됨을 말이다.
자신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아는' 데,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지의 지'라고 한다.
나는 '얀테의 법칙'을 좋아한다.
이 법칙은 10 계명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첫 번째 계명이 '네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마라'이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을 너무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고 자기한테만은 관대하게 살고 있지 않는가?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내 인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남들과 비교하며 더 많이 알려고 하고
더 잘하려고 하고 이기려고 하고
그렇게 과열되고 있던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 것이 '얀테의 법칙'이다.
좋았다. 그 편안함이. 내가 놓치고 있던 감사함과 행복들이 눈에 보였다.
군과 종교를 보수로 묶음으로써,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집단이 공존 가능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군과 종교는 공존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측면에서 너무나도 다른 집단이다.
군은 합법적으로 적에 대한 사살 행위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집단이고, 반면 종교는 살생과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는 부대마다 종교 시설이 있다.
- 종교와 군이 공유하는 공통분모는 그들이 보수적 성향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해당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군은 이해를 같이한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보거나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당연하다고 여긴 나 자신이 신기하리만큼 한심했다.
요즘 학생들은 착하고 성실해서 안쓰럽다.
대한민국이 만들어놓은 교육과정을 아무 의심 없이 성실하게 밟아온 내가 바보 같다.
남들이 다 가니깐 학교에 갔고,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깐 학원에 갔다.
다시 돌아간다면 죽어도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시 돌아가면 그날, 그날을 살아야겠다.
미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물론 최선을 다해서 신나게
누진세에 대한 나의 견해
가볍게 말할게 미래의 준석아
난 지금 가진 거라곤 곧 만기 되는 군적금뿐이다.
그러니 난 누진세에 찬성한다.
어느 날 네가 수백억을 버는 날이 왔을 때도 누진세에 찬성해라.
정의감 넘치는 보수가 돼라.
그게 간지다.
*** 지대넓얕은 내 세계를 넓혀준 책으로써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내가 그토록 간지러웠던 정치를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보인 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