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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먼저 죽으면 나는 너를 먹을거야

구의 증명

by 초대받은손님


Check point


궁금하다. 천 년 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일에 충격을 받을지, 혐오를 느낄지,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할지, 모멸감에 빠질지. 어떤 일을 비난하고 조롱할지. 어떤 자를 미친 자라고 부를지. 어떤 이야기에 공감하고 무엇을 갈망할지.


천 년 후의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



상대적으로 긴 기간 지금 같은 경우에는 천 년 후라는 기간 후를 떠올리면 난 우주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때쯤이면 인간이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정도?


이런 상상은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천 년 후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났을 땐 이런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아마 천 년 후의 사람들도 그들만의 희망이 있겠지?

우주 그 이상을 넘어 천 년 전인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어떤 희망이.

천 년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 또 품어서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고서 이모는 말의 시작과 끝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천만 번은 했을 것이다.

호흡이 잦아들기 전에는 입 모양만으로 내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잘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난 듣기 싫었을 것 같다. 들을 때마다 무서웠을 것 같다.

사랑해 가 아니라 미안해로 들려왔을 것 같다.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왔을 것 같다.

미웠을 것 같다. 이모도 세상도 운명도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



우주는 영하 270도. 아주 춥겠지. 당장 얼어붙겠지.

썩지도 않겠지. 그럼 예쁠 것이다.

우주를 동동 여행하는 유리 돛단배 같을 것이다.

구를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먹지 않고 구와 함께 동동 유리 돛단배가 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그 고요와 암흑에 담겨서,

인간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름다운 은하를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인간임을 벗어나보고 싶다.

인간의 모습을 탈피해보고 싶다.

그냥 날것 그 자체인 나를 마주해보고 싶다.

그럼 그냥 욕망 덩어리 그 자체 일려나..?



이모가 즐겨 듣던 주파수였다.

그 주파수는 웃기거나 울리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착한 척도 좋은 척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억지로 웃는 것 우는 것

착한 척하는 것

감추는 것 그럼으로써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

그런 모습이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왜 이렇게 까지 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래서 난 저 주파수처럼 투명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바보같이 맨날 웃어 보이려는 사람보다는

투명하게 자신의 속내를 비출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불만을 갖는 것이 창피한 이유의 증거가 아닐까.

이들에게는 내 평범한 일상이 상상도 못 한 꿈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 일 테니깐.

창피하다.



소니 빈의 자식과 손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고기를 먹어서,

사람 먹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돼지고기를 사 먹는 것처럼.



내가 죽기만큼 두려워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하다는 것이.

이 두려움이 오직 내게만 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의 세상은 넓어진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환경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불가능함이 당연함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기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말을 거는 것이 용기인 사람과 말을 걸어보는 것이 당연한 사람


그 당연함을 가지고 싶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당연함을 말이다.



살아 있을 때는, 죽으면 죽은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이나 극락 같은 곳이 아니더라도, 곡물을 체에 거르면 크고 무거운 것은 남고

작고 가벼운 것은 걸러지듯, 몸을 버리고 가벼워진 혼끼리 따로 모이는 우주가 있을 거라고.

이미 한 번 살아보고 죽은 자들이니, 그 우주에서는 몸에 매여 살던 이승에서처럼 각박하게 지내기보다는

유유자적 너그럽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이곳에서 한번 죽어봤던 사람처럼

지내고 싶다. '유유자적 너그럽게'



한줄평


최진영 작가님의 표현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정말 많은 문장들을 적어두었다.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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