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그리고 논문과 학술지 권력에 대하여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에서는 정보의 잉여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정보가 전송 매체를 통해 전달 될 시, 전달의 효율성을 위해 불필요한 잉여 정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압축을 하게 된다.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불필요성’은 중요한 화두였다. 그런데 실은, 정보 전달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이 ‘불필요성’이라는 것의 범주가 점차 좁아지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례로 TV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초기의 상용 흑백 TV는 형체를 알아보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은 ‘불필요성’의 범주 안에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컬러 TV가 되면서 기본적인 색상은 불필요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불필요성의 범주가 더욱더 줄어들고 있다. 흔히 말하는 SD, HD, FHD, UHD는 화질 측면에서 불필요성의 범주가 점점 좁아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정보 전달 체계의 발전에 의해 가능해지는데, 인코딩(촬영), 전송 채널 (영상 저장, 케이블), 디코딩(디스플레이)이라는 개별 전달 방식들이 발전 한 덕분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는 단순 평면 화면이 아니라 360도, 그리고 depth까지 표현 할 수 있는 VR 방식으로 발전 할 것은 명확 해 보인다. 이는 영상 전달 체계에서 ‘불필요성’의 범주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때, '불필요성'의 범주 안에 들어갔던 것들이 정보에 다시 덧붙여져 짐으로써 정보에 맛이 첨가되고, 전달성이 더욱 높아진다.
인간의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알고 있는 단어의 조합을 통해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는 비 가시적이며, 충분히 친절하디 못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불필요성'의 범주가 너무 넓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송신자와 수신자 간의 언어 체계, 혹은 단어의 범주만 조금 다르더라도 아니 범주가 같더라도 그를 해석하는 체계만 조금 다르더라도, 전달되는 정보의 양은 달라진다. 이러한 언어의 형태는 과거 인간의 물리적 한계에 닿아 있다. 입과 혀를 통한 공기의 울림이 도구 없이 사용되는 유일한 정보 전달 체계였으며, 약간의 필기구 추가를 통해 이를 시각화 한 것이 우리가 가장 널리 사용하는 전달 도구, 언어의 형태이다. 이는 자기가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을 가장 압축적으로 재현하는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정보전달 체계였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언어라는 매개체로 코딩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정보 전달 도구가 이토록 발전한 상황에서 언어가 가장 효율적인 정보 전달 체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많은 정보 전달 방식이 단순 언어에서 이미지와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식들이 아직도 딱딱한 문자와 언어의 형태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논문의 형태는 너무나 압축적이라 이를 해석 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활용 할 수 있다. 해당 분야의 사람들 이는 효율성 측면에서 뛰어나지만, 도구가 이렇게 발전한 상황에서 논문이라는 것의 본 목적인 지식의 확산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논문의 형태는 인쇄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었다. 과연 지식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A4 용지에 2칼럼으로 빽빽히 채워진 검은 글자들이 가장 최선의 방식일까? 특히 응용, 활용이 중요한 공학에서 아직도 유효한 방식일까? 압축적 전달 방식으로써는 유효하나, 단순 문자를 통한 전달은 그 파급성 측면에서 물음표가 붙는다. 특히나 최근의 연구들은 그래프나 표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2D 지면이라는 형식이 그 가능성을 제약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또한 이는 상호작용성이 낮다는 점이 큰 약점이다. 최신의 연구일수록 토론의 여지가 다분하며 토론과 질문을 통해 그 연구는 발전 할 수 있는데, 현재의 방식은 이런 소통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현재의 체계에서 학술지 권력은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한 학술지의 리뷰 및 게재 프로세스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의미있는 정보의 큐레이션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의 기여자들에게는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고 학술지들만이 이익을 얻는다. 저자들은 해당 연구가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 이미 권위를 획득한 논문지에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논문 제출)하고, 타 권위자들이 이를 제대로 보상받지 않은 채 큐레이션 (리뷰)한다. 학술지 외의 다른 저널들이 컨텐츠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취사 선택을 위해 편집자에게 비용을 주고 고용하는 방식과는 달리, 저자와 편집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며 독자들이 물리적 잡지 혹은 온라인 구독을 위해서는 학술지에 구독료를 지불한다. 심지어 일부 학술지의 경우 게재료를 저자에게 부담하게 하며, 페이지가 추가될 때마다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만약 학술지가 정보 전달 미디어로써의 역할에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미디어 자체의 전달 효과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나, 현재의 학술지는 단순 편집 작업 정도만을 수행한다. 심지어 일부 학술지는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이집트의 Hindawi 같은 저널은 수백 개의 저널을 만들어 놓고 그 중 일부 저널이 SCI(E)급에 등재되면 이를 타 회사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이를 알고서도 연구자는 자신의 정량적 연구 성과를 쌓고, 연구 펀드들의 요구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권위있는 학술지 투고 프로세스를 반복하게 된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게이츠 파운데이션을 포함한 일부 학술 펀드들은 Open Access, 그러니까 독자들이 무료로 해당 컨텐츠를 볼 수 있게 하는 학술지에만 투고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부 권위 있는 학술지들은 이에 반발한다. (수용하는 학술지들 또한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이같은 현실에서 이번에 구글이 주도한 Distill이라는 지식 공유 플랫폼은 주목할 만하다. 아직 문자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기존의 정지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며, 수백년간 문서 형태로 지속된 지식의 공유 과정에 경종을 울리고 추후 현재의 형태 또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기대 된다. 또한 웹 기반의 상호작용성을 가지고 있어 최신 지식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과 이에 따른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리뷰 프로세스가 안정화 되고, 학계와 펀드들의 인정을 받아 이 플랫폼의 지식들이 제대로 된 성과로 인정된다면 기존의 학술지 권력을 타파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무엇보다 공학적 지식의 최전선을 달리는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 하다. 나는 공학적 지식의 최전선은 학계의 논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며, 기업이 사업화를 하기 위해 보유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은 이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 중에서도가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API와 Open Source를 제공하는 특이한 기업이다. 구글의 주도로 시작된 이 플랫폼이 주목할만한 기술들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공유되고, 학계와 다양한 펀드들(특히 국가 R&D 사업)이 기존의 학술지 권력에서 벗어나며, 최신 연구들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대의 초석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