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작은 실수를 평생의 트라우마로 만드는 방법
누구나 실수를 한다. 경험이나 나이, 학문의 깊이에 상관없이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어린 아이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부모의 마음이 느긋하거나 시간에 쫓기지 않을 때는 쿨하게 웃으며 넘어간다. 다만 문제는 부모가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 아이 스스로 자기의 실수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모 눈치를 보게 만든다.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실수에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고, 그것은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자신의 실수과 그 때의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얼룩진 바지와 뜨뜻한 속옷.
불쾌한 표정으로 거칠게 정리하는 엄마?
괜찮다며 상황 해결을 묻는 의연한 엄마?
시작은 언제나 내 욕심
사건의 시작은 내 욕심이었다. 친구 아이와 우리 아이들이 만나 함께 체험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한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늦지 않게 가고 싶었다.
화장실이 무서운 8살의 실수
8살인 첫째는 요즘 화장실을 혼자 가길 무서워 한다. 6살때부터 혼자 문닫고 응가를 하던 첫째는 지난주부터 다시 화장실을 갈때는 엄마를 데리고 간다. 친구가 얘기한 무서운 귀신 캐릭터가 자꾸 생각나서다. 마침 그날 엄마는 밖에서 물통을 챙기느라 밖에 있었고,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 첫째는 도저히 혼자서는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서, 엄마를 찾으러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 오줌은 줄줄줄 수도꼭지처럼 다리를 타고 흘렀다. 뜨끈하게 젖은 바지가 불편하고 엄마에게 혼날까봐 마음도 불편한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마 마음이 화르륵 타올랐다.
화르륵 엄마 마음에 불이 붙었다. '그러게 왜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서는. 왜 2년동안 혼자서도 잘 가던 화장실이 다시 무서운건지. 왜 이렇게까지 급하기 전에 화장실을 미리 가지 않고. 왜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 굳이 거실까지 온건지. 왜 잘 내려가던 바지가 잘 안내려가는건지.'
화가 나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새도 없이 내 마음의 감정들이 둑 터진듯 쏟아 나왔다.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쏟아져 나오는 감정들이 내 앞의 약자에게 화를 내도록 종용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 앞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표정과 행동을 했다.
아이의 실수를 엄마에 대한 가해인양 대했다.
아이에게 티를 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지금 상황이 엄마를 얼마나 더 힘들게 하는지. 아이가 미안해했으면 좋겠고, 나를 더이상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티를 냈다.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를 위로라도 하듯 이성을 거치지 않은 행동과 말을 쏟아냈다. 내 불편한 감정들이 들불처럼 번졌다. 불이 난 심장이 답답하고 어깨가 추욱 처지며 그냥 다른 누군가가 이 상황을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미리 화장실을 가면 좋겠어." 돌을 던지듯 말하며 아이의 옷가지를 추스려 세탁실로 향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아이들과 멀어지고 싶다는 듯,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못들은 척 대꾸하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비처럼 내렸다.
마음속에 비가 내렸다. 세탁실로 가서 젖은 옷가지를 던지듯이 세탁기에 넣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성난 들불 위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내렸다. 미안함이라는 빗물에 불길이 꺼지고 나니,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고 비난의 눈길과 성난 표정으로 아이를 대했던 나의 부족함이 드러난다. 후두둑-후두둑- 미안함의 빗물이 내 감정의 불을 꺼트렸다.
다시 생각해 본다. 사실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겠나. 나를 귀찮게 하려고 고의를 가지고 한 행동도 아닌데. 아이는 그저 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소변을 참았던 것 뿐인데. 무서워서 혼자 화장실에 가기 어려웠을 뿐인데. 신나게 놀았더니 땀이 꽤 차서 옷이 잘 벗겨지지 않은 것 뿐인데. 아이의 작은 실수를 나에 대한 가해인양 몰아 세웠다. 엄마의 노력을 무시한 처사인양, 아이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좀 늦으면 어때. 아이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어차피 늦은 시간이 빨라지지도 않는다. 다행히 미리 서두른 덕에 많이는 늦지 않을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설명을 하면 이해해 줄 것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허리를 펴내듯, 일단 내려 놓자.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음이 시끄러울 때, 시간을 벌자. 화르륵 마음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을 조금만 확보하면 곧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비처럼 내릴 거다. 날뛰는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시간을 갖자.
무거운 짐이 내 어깨에 놓였다고 생각해보자. 이 상황을 그렇게 바꿔 생각해보자. 도저히 무거워서 감당할 수 없는 짐이라고 해보자. 바닥에 내려놓자. 내려놓고 생각하자. 가서 손수레를 끌고 오든, 도와줄 사람을 찾든, 기운을 조금 차리고 다시 해보든, 일단 내려 놓자. 지금 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가 바지에 실수를 한 상황 자체가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자. 짐을 내려놓는다는건, 내가 그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 놓는 것이다. 아이가 바지에 실수를 한 상황에서 나는 왜 화가 날까. 젖은 바지를 엄마인 내가 치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친구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화가 났을 수 있다. 다른 사람(아이)이 잘못 한 일을 내(엄마)가 대신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화가 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 마음이 화르륵 불타며 버겁다면, 모든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자.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저 주문을 외우듯 암기하자. 아이를 위한 말이든, 나를 위한 말이든,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하고 읊조리자. 아이는 어쩌다가 바지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엄마는 별일 아닌 일로도 갑자기 화가 날 수 있다. 내 지친 마음으로 굳이 아이에게 다가가 뾰족하게 가시를 세울 필요 없다.
아이에게 묻자. 아이의 상황을 도와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서, 굳이 다가가지 말자.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의 성급한 불편함을 누그러뜨리자. 내 아이는 생각보다 어려서 실수했지만, 생각보다 어리지 않아서 나름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괜히 내가 나서서 아이를 부족하게 여기며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자.
오늘의 실수를 양분삼아 아이는 자랄 것이다. 부족해도 괜찮다. 어떤 경험이든 아이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가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도우려고 애쓰면서 더 스트레스 받지 말자. 어차피 엎질러진 물. 한 오분쯤 그냥 둔다고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
내 잘못이 아닌 아이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날 수도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오줌싼 바지를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안치우면 된다. 잘못을 한 아이가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아이 혼자서는 잘 안되면 옆에서 방법을 설명해주면 된다.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잊는다. 다시 한 번 외우자.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주문 같은 말이 나오도록 해 보자.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는 지금의 상황과 그 때의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얼룩진 바지와 뜨뜻한 속옷.
불쾌한 표정으로 거칠게 정리하는 엄마?
괜찮다며 상황 해결을 묻는 의연한 엄마?
실수는 경험이 될 수도,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반사적으로 오늘의 실수처럼 반응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이가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늦어도 괜찮다. 약속의 상대방은 상황을 들으면 아마 이해해 줄 것이다. 이번 일이 아이의 경험치가 될 지, 아이의 흑역사가 될 지는 부모의 반응에 달렸다. 실수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트라우마가 된다. 모든 실수에는 배울 점이 있다.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난 뒤에는 실수가 아니라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