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 이 문장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나요. 만약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의 머릿속에 '공동체'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다수가 추구하는 대의에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지요. 당신의 두려움은 어쩌면 맞고 어쩌면 틀릴 겁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카페’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한국에서는 보통 커피를 파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카페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20대들이 주로 가는 카페, 커피가 맛있는 카페, 음식이 맛있는 카페, 편하게 쉴 수 있는 카페, 테이크아웃하러 가는 카페 등 그 속을 들여다봤을 때 그 형태와 나에게 주는 느낌이 얼마나 다양한지 잘 아실 겁니다. 그중 나에게 맞는 카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카페가 있듯이, 공동체 또한 그렇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공동체는 무엇인가요. 공동체 마을을 꾸리는 것과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은 함께 갈 수 없는 모순된 명제일까요?
공동체 마을의 이름으로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제로(0)'인데요. 제로에서부터 생각하자, 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애즈원이라는 공동체에서 사용한 말을 가져온 것입니다.
애즈원 공동체는 '다툼 없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반드시 제로에서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지식과 관성을 버리고 본질을 파고들어 다시 생각하는 태도를 말하는데,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가 나답게 사는 일을 방해하는가, 둘은 공존할 수 없는가, 같은 질문을 구성원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연구한다’고 표현하는데요. 자체적으로 연구소와 아카데미까지 운영하며 20년 넘게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공동체에 들어오면 그가 가진 가치관은 기존의 구성원들에게 낯선 것입니다. 그럴 때 기존 구성원들은 선택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새 구성원에게 공동체의 세계관에 맞추도록 강요할 것인가(기존 멤버들은 아주 편하겠지요), 아니면 그가 발을 디뎌 작은 혼돈이 일어난 공동체의 생태계를 제로에서부터 다시 탐구할 것인가.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마을을 번듯하게 만들어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게 목표인 공동체이길 바랍니다.
'제로에서부터',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사실 이를 실현해낸다는 건 역경에 가깝습니다. 물론 살아 내다 보면 굳은살이 박혀 단단해지고 익숙해질 것이 틀림없지만 쉬워지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집단의 세계를 견고하게 세워두고 여기에 맞출 사람 붙어라, 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공동체에 의문을 제기하면 기존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친밀함을 가득 쌓아놓은 우리끼리 놀자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 공동체에 마음을 다친 사람들은, 그리 말합니다. 사람들 속에서는 나를 포기해야 하더라. 저 또한 그랬으니 그 쓰라린 마음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길로 등을 돌리지 마시고 부디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를,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공동체 마을 만드는 과정(공부하기, 대화하기, 수익사업 만들기 등)을 세세하게 공유할 예정입니다. 제 이야기에 관심 있으신 분은 구독해 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