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만들면 좋겠지만 못 만들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마을 만드는 이야기라며 스스로 기획자라고 칭하고는 마을을 못 만들어도 좋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냐 하시겠네요. 물론 저는 마을을 만들고 싶지요. 할 수만 있다면요. 그러나 마을 만들기가 목표가 되는 건 좀 싫다고 할까요.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고 해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꽤나 집착하는 성격이라 마을 만들기를 해내고 말겠다, 생각하면 금방 피곤해질 것 같거든요. 어차피 일이란 건 되려면 되고 안 되려면 어떻게 하든 안 되는 거 같아서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꾸준히 살다 보면 어찌 되든 되지 않겠어요. 그게 제 맘도 편하고요.
그럼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 이름은 뭐가 좋을지 한번 고민해봐야겠습니다(좀 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없이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저의 욕구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사는 게 좋다는 건 기본 전제에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더 개인적인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주거가 불안정해서 그럴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산내에 집이 있긴 하지만 가게를 시내 한가운데로 옮긴 터라 새롭게 살 곳을 구해야 했거든요. 아이들 어린이집과 몇 년 뒤에 갈 초등학교와 가게의 위치, 거기다 자동차 한 대인 상황도 고려해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시내에서 저희 가족이 살만한 집은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너무 놀고먹었구나 싶었지요. 모두가 열심히 일할 때 베짱이처럼 산 대가를 치르는구나. 그럼 손이라도 벌려야 되는데, 손 벌릴 사람도 없습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지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 차리고 일하자 다짐하고 손발을 놀려보는데, 이거 영 재미가 없는 겁니다. 저는 베짱이가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동화 속에서는 베짱이가 게으른 인물을 상징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베짱이에게 식량을 나눠준 개미는 어쩌면 여름 내내 울려퍼진 베짱이의 연주에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연주가 제 작은 행복이었어요.”라고 말이죠. 그럼 그 말을 들은 베짱이가 신박한 제안을 하나 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여름에는 내가 식량 거두는 일을 돕고 연주도 해줄 테니 그렇게 함께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꼬마 개미들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겠지요.
성장하라 말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지금의 저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게 없는 자의 불안일 겁니다. 누구나 공부하고 투자하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하는데, 분명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을 겁니다. 제게 가치 있는 것들을 잃을 생각을 하니 너무 아까워 선뜻 전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불안한 마음으로 한쪽 발만 살짝 걸쳐 놓고 있는 신세가 한동안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기준대로 잘 살려면 브랜드 아파트에 외제차가 필요하고,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사교육비에 매달 떠날 휴양지에서 사용할 여윳돈까지 꽤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벌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말하는 잘 사는 모습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거든요.
마을에서는 자본주의를 살짝 변형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되어요. 그렇다고 혁명 급은 아닌 것이 하나도 안 버는 건 아니고요, 적당히 벌려고요. 그래서 이전 글에서 말한 수익사업을 하는 겁니다.
결국 저 같은 베짱이, 방아깨비, 개구리, 장수풍뎅이 같은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나는 춤을 가르쳐줄게, 그럼 나는 요리를 해줄게, 그럼 나는 농사를 짓고, 그럼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줄게… 대신 우리 집 짓는 일을 도와줘, 먹을 것을 좀 나눠줘! 그렇게 그렇게 모여서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시골집 살 돈은 좀 모아봐야겠습니다.
숲을의 권 대표가 내년에 이사 갈 집을 찾고 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전세금 안 올리고 이사 안 가도 되는 모두의 집에서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