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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l 31. 2022

프로젝트 안암(安岩)

#11. 마음

100명의 손님이 왔었다고 남겨놓은 글이 하나 있다.

https://brunch.co.kr/@sobeggun/99

주절주절 마음을 남겨둔 그 글이 벌써 10개월 전이다.

그 사이 우리 가게는 직원이 여럿, 다녀가신 손님이 몇만 명이다.(중복 손님 포함)

동네 전우같이 느껴지는 내공 깊은 사장님들, 직원분들, 직장인 분들 중 눈인사를 하고 반가이 맞이하게 되는 분들도 꽤 많이 생겼고, 그때 그날의 100명은 그 이상이 된 지 오래, 이제 주말엔 100팀이 넘는 손님이 오시기도 한다.

국밥 하나 파는 가게를 팔로우해주시는 분들이 1000명이 넘었고, 그렇기에 일상에 묻혀 소중했던 그 마음이 바래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 글을 꺼내 보곤 한다. 온전히 그 감사한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순간.

그 순간을 기록 해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요리를 시작할  기술이 뛰어난 요리사가 되길 원했지만,  과정에서 가장  배워둔 것은 재료의 소중함과 손님의 감사함이다. 내가  가게에서 가장 증명하고 싶은 것은 재료를 다루는 스킬이나 음식의 맛에 대한 확고함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을 방문한다는 결론을  손님들의 수고로운 행동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소비자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이나 손님들의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 과정은 첨단 시스템을 활용하여 효율로 구성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처럼 사람 대 사람의 역할을 강조하며 가치 증대로 구성할 수 있다.

손님이 우리의 공간에서 사용하기로 한 그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기 위한 공간 설계, 스토리텔링과 꾸준한 콘텐츠 확보, 직원의 인식,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2. 맛있다


맛있는 음식이란 누군가에겐 값에 맞는 음식, 누군가에겐 경험해본 적 없던 음식, 누군가에겐 익숙한 향과 맛을 가진 음식일 수 있다. 요리사로서 경력을 쌓는 동안 맛을 표현하거나, 향을 결정하는 기준과 기술은 섬세해졌지만 맛있다는 개념은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굉장히 복합적인 개념이다.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뒤로하고, 나는 요리사이므로 요리사로서의 생각을 남겨둔다.

종종 이야기하는 체내 PH, 그날의 기분, 공간이 주는 느낌, 동시간에 식사를 하시는 분들의 태도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며, 평소에 먹던 음식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훈련되어 있는 혀와 코는 설계되어 있는 맛과 향을 전부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님이 느끼는 것들 중 통제가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에 고민하는 것이 요리사의 역할이며, 주제를 표현하는 기술과 필요한 시점을 인지하는 것이 그 역량이기도 하다.


해서 요리사들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한다.(이는 브랜딩이나 마케팅의 원리도 같았다.)

정말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레이어를 정리하고, 음식의 맛과 향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렇기에 실력 있는 요리사들의 플레이트에는 이유 없는 재료가 올라가지 않는다.)

맛있다의 개념에 가깝도록 음식을 설계하지만 여전히 맛있다를 정의하긴 어렵다.

맛있다는 무엇인가?

200명의 손님이 온 날은 200가지의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을 마주하는 것이 요리사다. 그렇기에 휘둘리지 않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지 않고  "X까, 너희들이 뭘 알아" 해도 문제가 된다. 손님들을 관찰하고 시기에 맞게 기준을 수정하는 유연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남긴 안암이 맛을 인식하는 방법을 쓴 글을 인용한다.

안암의 구성원들은 안암에 대한 일관되고 긍정적인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만큼이나 안암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 경험으로만 공통되긴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경험적 요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지만, 가장 본질적 콘텐츠인 음식이 맛이 없다면 다른 경험적 가치들은 의미가 없겠지요.

요리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맛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끝내지 않았지만, “맛있다”는 개념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맛을 표현하는 방식이 섬세해지고,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될 뿐입니다.

해서 안암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맛있다”라는 기준으로 안암을 운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 “나도 그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맛있다는 말에 설레어하고,

또 그런 이유로 내 가치가 부정되는 것 같은 경험도 하게 되지만요.

그래서 저는 음식점을 “공감”의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나의 주장과 누군가의 공감, 그리고 다양한 해석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에서

모든 방문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어떤 계절, 어떤 날이든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좋아합니다. 안암의 국밥과 이 공간을요.


그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 결국은 나의 기호다. 안암은 기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난 국밥을 만들고자 했고,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기존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안암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성실히, 고르게 준비해둬야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면, 우리의 음식은 그제야 꽤 많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다.


번외.
이 부분이 브랜딩을 공부하면서 봤던 여러 인사이트와 달랐다.
내가 잘하는 것, 관심 있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라는 기준으로 시작하지 않고선 생각의 가지치기를 할 수 없는 나로서는 페르소나를 상상하여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산한다는 것, 브랜딩 해나간다는 것이 매우 기이하다. 망하는 브랜드의 대부분이 본인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본 적 있는데, 시장과 타깃, 수요 등을 고려하는 내용에 두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애초에 페르소나라는 존재를 상상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있다면 아마도 커다란 기업에서 팀으로 움직이기 위한 효율의 관점으로 모두가 공통된 상상을 할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마 그렇다면 비즈니스라고 부를만한 규모가 되어서야 그게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3. 휴가

안암의 하계휴가 일정은 8월 1일부터 5일까지. 발렌 어스부터 안암의 아이템 선정, 상권 분석 및 계약 과정, 그리고 현재까지 약 4년 남짓 휴가를 간 적 없던 나는 정말로 많이 지쳐있다.

아프다는 걸 눈치채선 안 되는 입장이라 아프고서야 아팠구나 깨닫고, 가게에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전전긍긍하던 시간 역시 내 삶의 일부기도 하다.

어느샌가 안암 역시 1년을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버려서, 이 동네 직장인들의 휴가시기를 알아보고 팔월 첫째 주로 잡았다.

그 누구보다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

이제 8월이 되면 다시 6일 근무를 시작하는 내게 그 시작을 알리는 휴가는 엄청나게 짧을 테다.  

언젠가의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쉰다는 것은 참 능력 있는 것이라는 걸.

사장님들의 휴가 소식은 어떤 소식보다 사치스러운 자랑이다.

나는 함부로 쉬는 사장을 본 적 없기에, 사장님들의 휴가 소식은 정말 대단한 결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담대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또 사실은 알고 있다.

그 사장님들도 참 많이 지쳐 어쩔 수 없었지 않다는 걸.

몸보단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가득 찬 어떤 마음들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다음 분기의 내가 다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을 여유 있게 받아내기가 어려워진다.

사장이 된 나의 휴가는, 모두의 평안이다.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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