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집밥 11
그 뭐랄까. 다 먹고 나서 입에 맛이 남지 않는 깔끔한 느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웬만하면 사 먹는 소바. 딱히 파는데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없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음식.
그게 토마토 소바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도 먹어보기 전엔 상상한 게 전부라 최대한 상상에 알맞은 음식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뭐랄까, 어디 가서 먹을 수 있는지 나도 모른다.
이 음식의 출처를 모른다. 어느 여름, 갑자기 시원하고 청아한 느낌의 무엇인가를 먹고 싶었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청귤을 얇게 저며 잔뜩 올려둔 소바를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기억과,
차가운 토마토를 와그작 씹어먹던 어린 시절 여름밤의 기억이 만났다. 여름이니까.
8월만 되면 어느 마트에 가던 찰토마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래서 여름엔 한 번쯤은 토마토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제철이기도 하고, 기억할 것도 많아서.
분명 성인이 돼서 토마토를 훨씬 많이 접했음에도 어렸을 때 엄마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땐 엄마가 시장에서 토마토를 사 오면 나는 집에서 설탕이 남았는지 꼭 확인하곤 했다.
설탕에 재워둔 토마토는 어쩌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디저트였는지 모른다.
토마토와 설탕이 영양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냄새가 남은 기억은 좋은 기억이다. 나는 엄마를 참 좋아라 하고, 그래서 토마토도 좋아한다.
웬만하면 라임은 집에 있다. 특히 이번 음식에서 중요한 재료다.
여기 없는 재료는 흑설탕, 국간장, 채칼이 다다.
참치액의 경우 액젓을 사려했는데 훈연이 되어 있어서 실패한 녀석이다.
냉장고에 있던 게 생각나서 사용하기로 했다.
쯔유를 보통 많이 사용하는데 굳이 사서 쓸 필요 있을까 싶기도 했고,
중요한 건 청아하고 산뜻함이므로 쯔유를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확인해보니 육수를 끓여놓고 사진을 안 찍었다.
뭐 한두 번도 아니니 여기까지 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해줄거라고 믿는다.
야채를 태운다. 토치를 사용했지만 직화라면 가스레인지도 상관없지 않나 싶다.
소바 육수를 낼 때 태운 재료를 사용한다.
훈연의 맛을 강화하고싶어설까? 명확하진 않지만 추측해본다.
어쨌든 난 원래 태우는 것을 좋아하므로 신나게 태운다.
태운 녀석들을 넣고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낸다. 참치액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되, 싱거운 느낌으로 맞췄다.
그리고 캬라멜 향이 훈연 느낌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흑설탕 녹인 것을 사용했는데,
그냥 흑설탕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국자로 떠서 넣었는데 단맛이 세지 않아서 좋다.
설탕을 넣는 이유는 단맛보단 입에 감기는 맛을 강하게 만드는 이유에 가깝다.
흑설탕을 사용한 이유는 감기는 맛 + 색 + 향 때문이다.
섞었으면 걸러서 냉동실에 넣고 식힌다. 차가울수록 좋다. 왜냐하면 냉소바니까.
토마토와 라임은 채칼로 슬라이스 해서 준비해두면 편하다. 사용할 그릇 크기에 맞춰 준비해두자.
손 썰지 말자. 피와 복수의 토마토 소바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조립하면 끝이다.
그러면 이렇게 된다.
치킨 튀겨먹고 남은 가루 있길래 그걸로 했다.
대충 막 숟가락으로 떠서 했더니 저렇게 되었다.
누가 새우라는 것을 믿겠는가. 나도 사진만 보고선 "내가 아나고 튀겨 먹었었나?" 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꽃 튀김 하던데,
저건 크레모아 넣고 튀긴 것 같다.
요즘 흰살생선 튀김이 엄청 먹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서 안 해 먹고 있다.
경양식 생선가스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어디 맛있는 대구살 파는데 없나.
어쨌든 깔끔한 소바에 푹 담가둔 기름진 튀김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국물 맛에 기름 맛을 잔뜩 담은 튀김옷은 다른 음식을 먹는 느낌을 준다.
손을 조심해라. 다치기 쉽다. 채칼이 있다면 말이다.
라임은 데코레이션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은은한 산미와 시트러스 향이 소바를 끝없이 들어가게 한다.
처음 만들고 처음 겪었지만 이거 진짜 맛있는 음식이다.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음식 중에 설명이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재료 본연의 맛이 많이 느껴져야 하는 음식이라 서다. 토마토 라임 육수 메밀 향의 밸런스가 깨지면 맛이 없다.
다른 향채를 첨가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토마토의 두께는 면의 두께랑 비슷한 게 제일 좋다.
면과 같이 건져 먹어야 하는데 더 두꺼우면 토마토 맛이 강해지고, 더 얇으면 식감이 없다.
라임도 마찬가지다. 혀 위에 올려두고 쪽 빨았을 때 이 라임의 산미를 다 끌어오겠구나 싶은 두께가 좋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고선 그렇게 먹었다. 너무 신선한 신맛이다. 입을 깔끔하게 해 준다.
육수를 한번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또 먹을 수 있다. 가급적 두 번 먹을 정도는 끓여두자.
간을 마셔도 될 정도로만 해놓기 때문에
라임을 담가서 마실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안 마신다.
보통은 있는 음식에서 모티브가 생겨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편이지만, 이 음식의 경우 잘 어울린다고 확신할 순 없었다. 밸런스를 맞추기도 어려운 맛이라 기대를 하면서도 안 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엄청 맛있다. 매 년 여름 되면 냉면부터 생각했는데 이젠 이거부터 생각날 것 같다.
먹어본 입장에서 꽁보리밥 같은 것을 말아서 훌훌 입에 털어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토마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라임과 등 푸른 생선을 기름 쭉 나오게 구워서 같이 먹어도 맛있겠다.
와. 맛있겠다. 곧 올라올 것 같다.
나는 요리사였던 거지 양식 전공인 게 아니다. 요즘 요리사들 양식 테크닉 가지고 한식 하고, 한식 조리법 가지고 양식하고 그런다. 요즘은 그런 거 없다. 먹고 싶은 걸 만들 때 알고 있는 것들 중 적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게 트렌드다. 원리를 알게 되면 부르는 것만 다르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 똑같고 그렇다.
글을 보고선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나는 맛있는 음식을 해서 (나랑) 나눠먹는 걸 좋아할 뿐이다.
안 그래도 이번에 가면 확인해보려고 한다. 생각보다 라임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결이 다르다. 요즘 동죽이 엄청나게 싸다. 이럴 때 먹어야지 언제 먹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