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집밥 12
뻔한 칼국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질적인 느낌도 아니다.
홍합 스튜가 칼국수 사리를 만났다. 근데 홍합이 아니라 동죽으로 만들었다. 이상할까?
호주에 있을 때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홍합 스튜를 팔았다.
가끔 새벽에 셰프가 직접 배 타고 나가서 홍합을 잡아오곤 했다. 직접 확인했냐고? 사진을 봤다.
(사진 엄청 보여줬다. 합성이었다면 그 사람은 요리가 아니라 포토샵을 이용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데런 잘 지내?)
아무튼, 그 방식 그대로 칼국수를 끓여도 맛있을 것 같았다.
김가루 올리고 뻔한 칼국수 말고, 그렇다고 조개 들어간 봉골레 파스타도 아닌 그런 거.
뭔가 조개 찜에 추가한 면 사리 같은데 요리인 느낌이랄까.
이것은 파스타도 아니고 칼국수도 아니여.
마침 동죽이 싸다. 어떤 계절의 조개는 굉장히 싼 가격으로 서울에 올라온다.
제철인 재료는 맛도 좋지만 가격도 좋다.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만드는 게 가계사정에도, 입맛 사정에도 좋다.
생각해보니 보통 조개의 제철은 봄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 동죽은 늦게 등장했다.
설마 주인공인 거야? 그래서 늦게 등장한 거야? 내 말 들은 거야? 대답은 왜 없는 거야?
우리가 가을에만 살찌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에도 표를 한번 만들어봤다. 숙련도가 높아져서 잘 만드는 걸까 재료가 적어지는 걸까.
사람은 친절하고 봐야 한다.
상황에 따라 막걸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준비하지 않는다.
그냥 썰고 싶은 대로 썰자. 어차피 스튜에서 야채 건져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국물 내고 향 내고 단맛 내고할 수 있으면 사실 원하는 대로 썰면 된다. 단, 나는 조개에서 육수가 빠지는 시간과 채소가 적당한 양의 채수를 내는 시간을 맞출 수 있게 재료의 크기를 결정한다. 말 그대로 야채가 재료라 건져서 먹어야 한다면 그에 맞는 익힘 정도의 크기로 썰고, 이번 경우엔 또 거기에 맞게 썬다.
그래서 되게 잘게 썰었다.
편하게 썰면 된다. 편하게 원하는 대로 썰어라
편하게.
재료를 넣고 볶는데, 가급적 불이 많이 달아올랐을 때 넣는 편이 좋다. 확 볶다가 조개를 넣고 와인을 날려주고 뚜껑을 닫아주면 뜨거운 압력이 생기면서 탁 하고 조개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이번엔 칼국수를 먹을 거라 물을 넣었지만, 보통은 조개에서 나온 육수만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특히 홍합이라면 토마토와 마늘을 많이 넣고 홍합육수로 조리하기도 한다. 감칠맛이 끝내준다.
동죽의 특징은 다른 조개에 비해 밋밋함에 있는 것 같다.
바지락이나 홍합에 비해 딱 떠오르는 특징은 없는데
모시조개나 백합, 그리고 바지락이 가진 장점을 적절히 가지고 있다.
바지락이나 홍합은 아무 데나 쓰기 힘들지만, 동죽은 아무 데나 쓸 수 있을 것 같달까.
그 사이 김치전을 완성한다.
맛있는 김치랑 부침가루가 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디비전 2라는 게임을 하는데 총 쏘는 게임이다. 무지 재밌다. 전염병이 창궐해서 인간사회의 아포칼립스 이후에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에서 인간들의 갈등이 메인 에피소든데 적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가 더 잔혹하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인간의 복합성을 잘 보여주는 게임이다. 요즘 코로나를 보면서 꽤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게임이다.
그것보단 저 팬은 계란 프라이 하려고 산 팬인데 여기저기 사용해보고 있다.
쓸모 있는 듯 없다.
이게 김치 전인지 김치 빵인지 모르겠는 두께를 자연스럽게 해내버린다.
중요한 건 맛있는 김치다. 잘 익은 김치보다 제 역할을 해내는 재료를 본 적이 없다.
이때 오징어가 있었으면 사용했겠지만 없었으므로 그냥 먹도록 하자.
매운맛을 낼 때 청양고추와 페퍼론치노 홀, 혹은 크러쉬드 레드페퍼를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
맛으로 느끼고 싶을 때 보통 청양고추를 사용하고, 향 위주로 필요할 땐 페퍼론치노, 직관적으로 매운맛이 느껴져야 할 땐 크러쉬드 레드페퍼를 사용한다. 맛이 느껴지는 부위가 다르다.
건고추와 생 고추의 차이일 수 있지만 맛을 설계할 때 그런 종류의 기준을 가지고 한다.
(물론 건고추는 육수용으로만 사용하고 먹진 않는다)
토마토는 그 자체를 먹기 위한 것이라기 보단 육수의 풍미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토마토가 가진 자연 산미와 감칠맛 단맛은 조개랑 매우 잘 어울린다.
맛을 끌어올려주면 올려주지 해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사용하진 않는다.
집에 있기 때문에 쓰기도 한다.
면을 삶을 때 육수에 넣고 삶지 않았다. 가능한 맑게 먹고 싶었다. 칼국수를 넣을 땐 따로 끓여도 괜찮다.
그렇다고 밍밍해질 정도로 육수의 맛이 약하진 않다.
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접할 땐 칼국수라고 우기고,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접할 땐 파스타라고 우겨라. 맛에 자신 없나? 거꾸로 하면 된다. 사실은 파스타였다고, 혹은 칼국수였다고.
억지 부리지 말라한다고? 이렇게 말해라. "Hey, 누들로드 못 봤어? Come on!!"
하얀 술이라고 써놨다고 희석식 소주를 사용하겠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해본 적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막걸리는 궁금하긴 하다.
그게 의미가 있나?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도록 하자. 외국인에게 대접할 땐 한식이라고 하고 한국인에게 대접할 땐 양식이라고 하자. 뭐든 좋으니 스스로 있어 보이는 방향을 선택하자. 둘 다 자기한테 익숙한 맛인데 이질적이라 좋아라 할 거다. 이 음식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게 포인트다.
한식 칼국수만큼 혀를 뽑는듯한 감칠맛이나 맛의 강렬함은 아니면서, 홍합 스튜의 혀를 쪼는듯한 진한 맛도 아니다. 뭔가 쿨룩하고 기침을 하면서도 입에 자꾸 밀어 넣게 되는 은은한 맛이다.
되게 맛있게 먹었다. 조개가 들어갔는데 어떻게 맛이 없겠나. 나는 내가 한 음식에 매우 관대한 사람이지만, 그리고 매우 주관적인 설명을 첨부하는 타입이지만 맛이 있는지 없는지 거짓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뭐라고?
아무리 찾아도 동죽이 왜 동죽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누가 알면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
어느 지역에선 불통이라고 부른다길래 불통을 검색했더니 불통이 시그니쳐인 분이 등장하셨다.
온 우주의 기운을 다해 찾아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다.
근데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있는 거야?
.. 야
주말엔 빵도 먹자. 집에 있을 땐 더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