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글을 쓸 수 있을까?
5월 8일 어버이날은 아버지 양력 생신이기도 하다.
소탈함을 즐기면서도 아들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셨는지
아버지는 올해 어버이날에도 글 한 편을 보고 싶다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생업에 시간을 뺏겨서, 글 쓸 경황이 없어서, 마땅한 글감이 없어서 등
글을 쓰지 않을 이유는 수레 한가득 실을 수 있을 판이었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글을 쓸 수 있는 황금 시간대를 놓치고 나니
일요일 저녁쯤 바쁜 것 같으니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아버지의 씁쓸한 카톡이 가족 카톡방에 올라왔다.
글 한 편 써드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반문을 해보아도
머리로는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이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낑낑대며 눈을 떴다.
화요일 아침이다.
월요일 역시 그냥 보내버리고
뭔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다가
방 불을 채 끄지도 못하고
바닥에 가라앉듯이 누웠다가 잠들었다.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데
악몽을 꿨던 게 분명하다.
화장실 거울을 보니
팅팅 불어있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나를 간신히 쳐다보는 모습이다.
거울 속 마주한 얼굴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글을 써줄 수 있겠냐고
특히나 마음과 정성을 담은 글을 써줄 수 있겠냐고 일갈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고개를 들기 어려운 것은
거울 속 얼굴이 아니라
거울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리되지 않은 방구석
어지럽게 늘어져있는
옷가지, 책, 촬영장비, 쓰레기 등
온갖 잡동사니처럼 늘어져있다.
바쁘게 산다고, 열심히 산다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결과물이
날것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물리적으로 그 상태로 있고
점점 덩어리 져가고 있는 와중에도
눈 뜬 장님처럼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마음속 상황은 오죽했으랴
하고 싶은 것
나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은
항상 구석 모퉁이로 밀어 넣고
영양가가 있는지 모를 것들로만
내 생각과 시간과 힘을 쏟아왔다.
뭔가 바쁘게 살고는 있는데
나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거의 유일하게 순수하게 즐겁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와중에도 손을 놓지 않는 명상과 수련 덕분
그마저 없었으면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한 것
이것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어제의 일로 보내주고
내일은 성급하게 굴지 말고 내일이 되면 제 때 받아주고
오늘,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나 자신을 위한 시간, 글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방치해왔던 브런치를 닮아
덩그러니 멈춰있는
나 자신의 꿈과 희망도
채 꺼지지 않은 불씨를 화톳불 모아
풀무질로 다시 키워보련다.
잠깐 방구석에 앉아서 써 내려간 이 글이
나에게 묘한 위로와 치유가 된다.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다.
방 정리는 방 정리대로 후딱 끝내고
오늘 하루 글을 몇 편 더 써 내려갈 생각이다.
쓰지 못했던 아버지를 위한 글도
지금 지핀 마음의 불씨로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 일상
스스로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