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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한달: 자기발견] Day08.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

by 가온왕



Q1. 당신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모순덩어리


나는 모순덩어리이다.


무언가 한 가지에 대한 하나의 생각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왜 그럴까? 뭐가 나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라보기에 대한 의지 vs 두려움


어떤 것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상반된 태도와 관점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내 역할과 태도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고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문제가 무엇인지 바라보고 정의 내리는 것부터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라보기 자체를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마다 각기 다른 수천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제와 현상이 무엇인지 바라보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하지 못하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욕망과 태도가 명확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내가 그 주제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할 기회가 없었거나, 생각하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면 정의가 되지 않고, 나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불명확한 생각과 감정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실제와 바람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내서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Q2. 내가 보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에서 차이를 느낀 적이 있나요?


질문의 의도


흠.. 당연히 차이를 느낀 적이 있다.


내가 관찰과 해석의 수준만큼 나 스스로의 모습이 보일 것이고, 다른 사람의 관찰과 해석의 수준만큼 그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주제에 대해서 소통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 차이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뭔가를 더 이야기할 게 없다.

그저 각자의 수준으로 나라는 대상에 대해 관찰하고 해석했을 뿐이니까.



그런데 질문의 의도가 정말 이거를 얘기하는 것일까?

아마 질문의 정확한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스스로에게 어떠하기를 바라는 모습과
내 실제 모습에 대해서 차이를 느낀 적이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에 대해서 차이를 느낀 적이 있는가?’



이 문제면 이제 할 얘기가 많아진다.



실제 나 vs 스스로가 어떻기를 바라는 모습


실제 나는 정말 냉철하게 피도 눈물도 없는 팩트에 기반한 나이다.

스스로를 미화시키거나 폄하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팩트에 기반한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모습과 스스로가 어떻기를 바라는 모습 간에 간극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간극이고 채워지지 않는 불만일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고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 및 이해 부족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의 부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왜곡되고 편향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우주는 인간의 바람과는 다르게

냉철하고 한 끗 착오가 없게 물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 의해서 펼쳐진다.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생각과 판단은 언제나 결괏값은 오차를 부른다.



보이기 바라는 모습 vs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모습


먼저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모습부터 짚고 넘어가자.

인간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모여서 평판이 되고, 내 사회적인 위치와 가치를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평판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빠르게 파악하고 나와 관계를 맺을지 여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결정짓는 판단기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모습, 실제로 보인 모습, 그리고 그들 각자의 수준의 해석이 쌓이고 어느 정도 평균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찰과 해석 수준은 내가 바란다고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판을 신경 쓴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든 인위적인 노력으로 짜내든 간에 그들에게 잘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다음에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것이 어떻든 간에 그것 역시 하나의 현상으로서 다시 관찰되고 해석될 수 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판은 ~다고 보인다.’라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이려는 노력과 그 결괏값과는 또 별개로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 바람이 내 마음속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이 어떻기를 바라는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또 다른 부분도 있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비치기를 바라는 모습은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담담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지 못한다면 팩트와 심한 괴리가 생기고, 그 불일치에서 오는 간극 때문에 시종일관 감정적으로 괴롭거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떻다?


팩트에 기반한 판단과 주관적인 판단에 대해서 나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평상시 내 모습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이고, 왜곡된 관점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린다.

‘내가 어땠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생각을 펼치다가 현실을 맞닥뜨리고 괴로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명심해야 한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 것은 내가 그 무언가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내가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번뇌하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서 나는 더 담담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금욕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실제로 현상이 어떠하다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1) 내가 팩트에 기반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 깨닫고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고 현실과 팩트에 기반한 판단을 통해서 더 이상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힘들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Q3. 어떤 면에서 어떤 이유로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나요?


위에서 상술했듯이, 팩트를 정확히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관찰된 것이 스스로 바라는 주관적인 생각과 다른 부분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부족한 것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



Q4. 그 내적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나요?


냉철하고 담담하게 관찰하기, 바라보기.
팩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나는 기본적으로 명상과 글쓰기를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갈등을 진정으로 뛰어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깨어있는 의식으로 나 자신과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간극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면 반드시 끈질긴 노력과 의지를 갖고 내 관점을 바로잡아 뛰어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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