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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May 31. 2021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지금 세 번 토마토를 불렀는데 부를 때마다 내 입 속에 침이 고였다. 침이 고인다는 것은 토마토의 참맛을 잘 안다는 뜻이다. 내게는 토마토가 보약이다. 어딘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토마토를 먹으면 금세 온몸 세포들이 쌩쌩해지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뭐, 기분 탓이든 사실이든 상관없다. 어쨌든 나를 기쁘게 해 주고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니까.


 내가 이토록 토마토를 좋아하게 된 것은, 2005년쯤 혼자 자취를 하고부터이다. 이전에도 토마토를 좋아했지만 엄마가 주면 먹는 정도였지, 직접 돈 주고 사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홀로 자취하며 직장을 다니던 그 시절의 나는, 늘 '집밥'을 그리워했더랬다. 물론 엄마가 밑반찬과 김치를 가져다 냉장고에 넣어주셨지만 그것으로 버티기에는 찌개와 국, 맛있는 요리가 고팠다. 그렇다고 음식 솜씨가 대단해서 해 먹는 스타일도 아니라, 사내식당에서 먹는 점심이 최고의 포식처였다.


 자취방과 회사의 거리가 꽤 있어 새벽 6시 30분에 기상했던 나는 꾸미고 나가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11시 40분부터 시작되는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덕분에 점심 급식을 폭식했고, 폭식 후 앉아서  5시간 넘게 일한 덕에 두터운 복부살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럼 또 저녁은 굶어야 한다. 당장 뱃살이 늘었는데 퇴근 후 밥 해 먹기가 양심에 찔린 것이다. 결국은 하루 한 끼만 먹는 셈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거나 회사 회식이 있는 경우는 제외다. 어쩌면 홀로 밥을 해 먹는 것 자체가 귀찮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건강 관련 기사를 쓰다가 한 끼라도 굶으면 폭식으로 이어져 살이 찔 수밖에 없다는 자료를 읽게 되었다. 자료를 읽고 폭풍 공감을 했더랬다. 그 사례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굶지 말고 뭐라도 먹어야 다음 끼니때 폭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부담스럽지 않은 대체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때 발견한 것이 토마토다. 버스에서 내려 자취방 골목으로 가다 보면 횡단보도 옆에서 몇 종류의 과일을 작은 바구니에 올려놓고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볼 때마다 살까 말까 고민했더랬다. 고민을 한 이유는, 과일들의 상태가 늘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흘깃 보았는데 몇 개 바구니에 과일들이 담겨 있었다. 그중 토마토가 가장 싱싱해 보였다. 몇 시간 전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과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었던 지라 마음이 생겼다.


"할머니, 토마토 한 바구니에 얼마예요?"
"한 바구니에 삼천 원인데, 두 바구니 하면 오천 원에 줄게."


 와우, 할머니의 딜에 나는 또 생각의 늪에 빠졌다. 두 바구니 샀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있는데 가격적 메리트에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1+1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물욕이 있었던 나는 끝내 두 바구니를 샀다. 혼자 먹기에는 꽤 많은 양이었다. 뾰족구두를 신고 두 봉지를 낑낑 대며 자취방으로 향한 나는, 오자마자 널브러졌다. 그리고 토마토를 정리하다 맨 밑에 깔려있던 녀석들은 짓물러 깨져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 것이 세 개나 되었다.


 할 수 없이 깨진 토마토 세 개를 먹을 수 있는 부분만 잘 도려내 접시에 잘라보았다. 워낙 토마토가 커서 양이 꽤 많았다. 작은 밥상에 토마토를 올려놓고 먹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회사였다. 오늘 다 써서 올린 기사 내용에 문제가 있으니, 내일 다시 전화 인터뷰해서 고치라는 내용이었다. 퇴근 후, 상사의 전화를 받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전신 거울 속에 잔뜩 화가 난 복부비만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근래 사내식당 밥 메뉴가 좋더니만, 결국 다이어트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굶을까?
 굶어서 빼는 것이 확실하긴 했다.


 하지만 잘 잘라져 있는 토마토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야 나, 다이어트에도 좋은 토마토'


 결국, 그날 나는 토마토 한 접시를 맛있게 비웠다. 신기하게도 토마토가 사라질수록 내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토마토는 정말 건강한 녀석인 게 틀림없었다. 이후, 나는 토마토 사진만 봐도 입에 상큼한 침이 고였다. '저 녀석을 먹으면 난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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