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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an 22. 2021

덕분에 발견한 재능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두 아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꼭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을 가기까지 게으름과 귀찮음을 이겨내야 하는데, 막상 다녀오면 뿌듯하다.


그곳은 바로, 미용실이다.


 집 앞에 미용실이 있어 언제든 점퍼 하나만 걸치고 나가면 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집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참 무겁다. 하지만 두 아들의 머리가 점점 귀를 덮어, 가긴 가야 했다. 그래서 미용실에 전화해보니, 한 시간 후에 오란다. 파마 손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어느 정도 말아놓고 있을 시간이란다. 큰 마음먹고 가기로 했으니, 시간 맞춰 아이들 데리고 미용실로 향했다.


 아뿔싸! 파마 손님이 이제 막 파마를 말기 시작했다. 미용사님께서는 미안한 표정으로 조금만 기다리란다. 그래서 소파에 앉았는데, 파마하러 오신 60대 아주머니께서 이런저런 말을 거신다. 그래서 간만의 수다로 맞장구를 치는데, 거울 속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오 마이 갓!!
 마스크를 안 하고 계셨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괜찮을 거야. 괜찮으니 파마도 하러 오셨겠지.'
 '아니, 근데 무증상 상태이시면 어쩌지?'
 '아, 집에 갈까?'
 '마스크 쓰라고 할까?'


 고민 끝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어? 근데 마스크?"
 

 그제야 미용사님께서도 얼른 구비하고 있던 마스크를 아주머니께 드렸다. 아주머니는 깜빡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최대한 그럴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다가

 "아이고, 급한 일이 있는데 깜빡하고 그냥 왔네요. 머리는 다음에 다시 하러 올게요"

 하고 아이들을 급히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머리를 깎여 집에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너무 혼자 유난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찝찝함을 느끼며 계속 그 자리에서 그것도 아이들 머리를 깎여 오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머리를 깎겠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왔다. 더벅머리를 한 아이들을 보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인가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날 밤, 나는 일을 저질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발기와 미용 가위를 산 것이다.


 미용? 생각해 본 적 없다.
 머리? 깎아본 적 없다.

 다만, 아이들 머리를 어떻게든 깔끔히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다.


 이발기와 미용 가위를 사는 총비용은 3만 원 남짓.

 아이 둘 머리 깎는데 그 정도 금액은 드니, 쓸데없는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두 아이는 겨울방학이다. 하하하... 그러니 머리 조금 이상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더욱이 거리두기 기간이라 밖에 나갈 일도 없으니..


 로켓 배송으로 하루 만에 미용가위와 이발기가 도착했다. 그것들을 받아 들고 가슴이 쿵쾅댔다. 괜히 망치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본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로 '남아 머리 깎기'로 검색해 동영상 서너 개를 봤다. 몇 편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해본 적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일곱 살 아이부터 앉혀 놓고 이발기를 들었다.


 이게 뭐라고 떨렸다. 심호흡을 하고 가위를 들었다.

 '그래, 괜찮아. 어차피 망하면 미용실 가서 다시 다듬으면 되니까.'


 아이가 움직였다. 나는 무척 예민해졌다.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하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아이는 머리카락이 따갑다고 칭얼거렸다.


 '아, 여기서 멈출까?'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안돼, 멈출 수 없어. 이제 한쪽만 더 하면 돼.'
 '어라? 머리가 짝짝이네? 다시 조금만 더'
 '아고, 쥐 파먹었네. 그럼 저쪽도 조금 더'

 그렇게 우여곡절 머리를 다 깎았다.


 뭔가 이상한데 깔끔하고, 깔끔하지만 어설펐다. 아이는 연신 거울을 보았고 나는 계속 '와우~대박! 완전 잘 생겼어. 정말 멋있어! 정말 귀여워!'를 외쳤다. 그렇게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정말 그래 보였다.

 코로나가 뭔지, 미용에 '미'자도 모르는 내가 이발기와 가위를 들게 하는지...


 어제는 내 머리를 셀프 염색했다.
 하, 염색이 참 잘 됐다. 재능의 재발견인가?


 은근슬쩍 남편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려본다.


 남편이 다급하게 외친다.

 "나 오늘 미용실 갈 거야. 손대지 마."


 하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즐겁게 지나간다. 이 또한 코로나 덕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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