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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an 29. 2021

맥주보다 좋은 탄산음료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술이 좋아서 먹지 않았다. 사회생활 중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색한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억지로 마셨다. 물론, 맥주의 시원한 목 넘김은 좋아한다. 딱 거기까지다. 목 넘김이 시원한 것은 좋은데, 배가 불러오고 정신상태가 알딸딸해지는 것이 싫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취하는 것이다. 취하면 이성을 잃고, 이성을 잃으면 술이 술을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6년째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시작은 둘째 임신이었다. 둘째를 가졌으니 당연히 술을 멀리했다. 그리고 시작된 육아, 첫째 때는 육아 중에도 밤이면 남편과 오붓한 음주 타임을 가졌다. 그러나 그 오붓한 시간에 술을 먹은 나는 신세한탄과 눈물로 유쾌하지 못한 대화로 이끌고는 했다.
 술만 먹으면 무한 용기가 발동해, 그동안 쌓아 둔 감정들을 다 표출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 감정들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원망으로 번졌다. 이는 매우 나쁜 습관이었다.


 만족스러운 삶이 어디 있을까? 온통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인생의 고비를 넘기며, 꾸역꾸역 오늘을 산다. 그런데 술만 먹으면 세상에서 나만 불행한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다음 날 아침 무한 후회를 했다. 취한다는 것은 결국 추함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물론 맥주의 시원한 목 넘김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 나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있다. 탄산음료!

 목 넘김이 맥주의 그것과 비슷하고 한 캔을 다 마시고도 정신이 말짱해 기분이 좋다. 마시기 전과 후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다.


 맥주와 탄산음료가 주는 만족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줄 수는 있다.

 매일 밤 11시, 나는 아이를 재우고 홀로 거실에 앉아 탄산음료를 마신다. 꿀꺽꿀꺽 연신 삼키면, 속이 시원하고 가슴에 맺힌 그 무엇인가가 톡톡 터지는 탄산과 함께 공중으로 분해되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때가 있는 것 같다. 공부할 때, 육아할 때, 회사 다닐 때, 효도할 때, 놀 때, 잘 때, 먹을 때.... 그때를 놓치면 후회가  온다. '아, 그때 더 누릴 걸'하고 말이다.


 요즘의 나는 '아이들 옆에 있어줘야 할 때'에 놓여 있다. 많은 생각이 오가지만 내 성격에,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 다만 아이들 옆에 있어줘야 할 때가 지나고, 또 다른 때가 왔을 때, 무능력한 내가 되어있을까 걱정이 된다.  


 하..
 탄산음료 한 모금을 마셔본다.


 손에서 놓아버린 '드라마 쓰기'를 다시 시작할까, 현실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될 자격증을 취득할까, 다음 주 월요일 2시에 잡힌 프리랜서 면접을 갈까 고민이 된다. (사실 나는 내가 어떻게 결정할지 다 알고 있다.)


 탄산음료를 탈탈 털어 다 마셨다.

 빈 캔을 만지작거리다 아이 옆에 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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