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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 찰리 Jun 18. 2017

호러의 계절이 돌아왔다(하)

공포소설 연대기_2편 : 좀비소설 ~ 모던호러까지

'공포소설 연대기_1편 : 고딕소설에서 펄프픽션까지'에서 이어집니다.


좀비, 무덤에서 일어나다 

왼쪽부터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 1편이 실린 펄프 잡지 '홈 브류'의 1922년 2월호,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황금가지), 영화 리애니메이터 포스터,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

죽은 자가 되살아나 지상을 걷는 괴물 '좀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영화 '부산행'의 천만 관객 흥행 성적만 봐도 그렇다. 현대적인 좀비를 정립하고 좀비가 독립적인 장르로서 자리매김한 건 1968년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개봉 이후로 친다. 하지만 시체를 되살린다는 아이디어는 호러 소설에서 먼저 다뤘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1922)는 미치광이 과학자 허버트 웨스트의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되살린 시체들이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인 괴물이란 점은 현대적인 좀비와 다르지 않다. 소설은 '리애니메이터(국내 개봉명 좀비오)'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지금의 좀비를 있게 한 또 하나의 걸출한 작품은 리처드 매드슨(1926~2013)의 '나는 전설이다'(1954)다. 지상의 인류가 모두 멸망하고 홀로 살아남은 사내에 대한 이야기로, 그가 싸우는 상대는 변종 박테리아에 감염된 흡혈귀들이다. 기존의 흡혈귀물을 비틀어 뱀파이어를 절대 악의 괴물이 아닌 바이러스에 감염된 다수의 괴물로 묘사하고, 소수의 인간이 고립된 채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점 등은 이후 수많은 좀비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빼어난 주제 의식과 지금 읽어도 퇴색되지 않는 세련된 작품인 만큼 일독을 권한다.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읽고 작가의 길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호러의 킹을 영접하라 

왼쪽부터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황금가지), 캐리(황금가지), 그것(황금가지), 스탠드(황금가지).

먼 길을 왔다. '호러의 킹' 스티븐 킹(1947~)이다. 공포 작가로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54편의 장편소설과 200편에 달하는 단편을 발표하는 등 다작을 하면서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3억5천만부 이상 팔렸다(2006년 기준). 


스티븐 킹은 브램스토커상(여섯 차례 수상해 최다 수상자), 월드판타지상 평생공로상, 그랜드마스터상 등 장르 소설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고, 여기에 더해 오헨리상, 2003년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고 2015년엔 미국예술훈장을 수훈하는 등 문학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작법서인 '유혹하는 글쓰기'와 호러 평론집인 '죽음의 무도' 등 논픽션 작품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탁월한 상상력과 간결한 문장, 평화로운 일상에서 서서히 쌓아올린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귀기(鬼氣) 어린 전개가 일품이다. 영화화도 활발한 편이라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이 작가를 영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단편에서 시작해 중·장편으로 옮겨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단편집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와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ift)'으로 첫발을 떼길 권한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출세작 캐리(197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샤이닝(1977), 미저리(1987),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1999) 등은 가볍게 읽기 좋다. 작가의 소름 끼치는 세계에 익숙해졌다면 한 마을이 거대한 투명 돔으로 덮인 상황에서 출발하는 '언더 더 돔', 전염병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걸작 '스탠드', 절대 악과 맞서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것' 등 만만찮은 분량을 자랑하는 대표작을 읽을 차례다. 

필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소설 '다크타워' 역시 그답지 않은 이 세계 배경에 그다운 호러 감각을 잘 조합해 담아내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는 완결되지 않은 데다가 출간 속도가 느린 편이라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스티븐 킹의 라이벌로 꼽히는 흥행작가 딘 R 쿤츠의 작품도 매우 훌륭하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 수가 많지 않다.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자 오드 토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호러 판타지 장편소설 '살인예언자'(다산책방)가 국내 출간되고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개봉하며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안톤 옐친이 비극적인 사고로 요절해 영화 후속편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모던 호러, 공포는 계속된다 

왼쪽부터 20세 고스트(비채), 폐허(비채), 몬스트러몰로지스트(황금가지), 검은 집(창해).

차세대 '호러의 킹' 타이틀을 누가 가져갈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여러 재능 있는 작가들이 왕좌를 차지하고 위해 무시무시한 악몽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 힐의 첫 번째 소설집 '20세기 고스트'(비채)는 등장과 동시에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호러 소설 최고의 영예인 브램 스토커상을 비롯, 월드판타지상, 브리티시판타지상, 인터내셔널 호러 길드상, 레이 브래드버리상 등을 휩쓸었다. 그의 본명은 조지프 킹으로, 스티븐 킹 아들이다. 아버지 후광에 기대기 싶지 않아 필명으로 데뷔한 그는 아버지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콧 스미스는 작가로 활동한 24년간 단 두 편의 소설만 발표한 대표적인 과작(寡作) 작가다. 배우 중엔 원빈, 작가 중엔 스콧 스미스라 할 만하다. 하지만 워낙 작품의 면면이 훌륭해 독자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2006년 출간한 '폐허'(비채)는 버려진 유적에 갇힌 청춘남녀가 마주치는 초자연적 공포를 다뤘다. 명쾌한 플롯이라 장르 소설 팬이라면 예측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심리 묘사와 팽팽한 긴장감이 백미. 

데이비드 모렐의 '도시탐험가들'(2006, 비채)은 아동용 교양서적 같은 제목과 달리 공포와 긴장감의 수위가 높은 소설이다. 버려진 건물을 탐험하는 도시탐험가들(creepers)이 8시간 동안 겪는 끔찍한 일들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생생한 문장으로 전달한다. 

일본은 장르문학, 그중에서도 추리·미스터리 분야 강국이다. 1920년~1930년대에 활동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는 정통 추리소설에 기괴하고 음울한 서스펜스와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접목시켰다. 1954년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들고 이듬해부터 시상한 에도가와 란포상이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상징한다면, 일본호러소설대상(日本ホラー小説大賞)은 일본 호러 소설의 깊이를 보여준다. 

가도카와 서점과 후지TV가 주관해 1994년부터 시작된 이 상의 대표적인 수상자는 바로 작가 기시 유스케다. 1996년(3회) '13번째 인격'(창해)으로 장편상 가작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보험사기극을 소재로 한 소설 '검은 집'(창해)으로 대상을 거머쥔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무하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작가는 '악의 교전'(느낌이있는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핏빛 광기를 묘사한다. 

츠네카와 코타로의 2005년작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노블마인)와 소네 게이스케의 '코'(북홀릭)도 국내 출간된 일본 호러 소설 대상 수상작이다. 동양적인 정서와 생활양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일본의 호러 소설은 한국 독자들에겐 더 섬뜩하게 읽힌다. 북미권 작가 소설에서 '존은 정원 수영장에 떠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한국 독자가 느낄 부동산적 괴리감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릭 얀시의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시리즈(황금가지)의 국내 출간은 몬스터 애호가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알프레드 크롭 : 최후의 기사단'(문학수첩리틀북)과 '제5침공'(알에이치코리아)으로 각각 판타지 모험물과 SF 장르에서 대중성, 필력을 검증받은 작가가 이번엔 1888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고딕 호러 장르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괴물을 연구하고 사냥하는 '괴물학자' 펠리노어 워슬롭과 그의 곁을 지키는 조수 윌 헨리의 활약상을 그렸다.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작품 내로 포섭시켜 몰입감을 더한다. 기괴하고 끔찍한 괴생명체의 무시무시한 활약상(?)은 호러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화 판권이 팔렸는데, 영화의 수위 조절이 걱정될 정도다. 

못다한 (무서운) 이야기

왼쪽부터 로즈메리 베이비(동서문화사), 시귀(북홀릭),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코너스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황금가지).


언제나처럼 분량 조절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별로 작품을 소개하다 보니 놓친 작품들이 많다. 놓치기 아쉬운 주요 작품들을 적어둔다. 좁은 식견의 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추천 부탁드린다. 좀비물은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한 것으로 여겨 따로 꼽지는 않았다. (이하 가나다순) 


로즈메리의 아기(로즈메리 베이비) - 아이라 레빈(동서문화사, 황금가지)
망량의 상자 - 교고쿠 나츠히코(손안의책)
시귀 - 오노 후유미(북홀릭)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 에드거 앨런 포(코너스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이미지박스)
피의 책(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 클라이브 바커(씨앤씨미디어, 끌림) 절판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 이종호 외(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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