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날벼락
시작은 21년 3월 초였다. 갑자기 설계사가 '땅의 형태가 전해 들은 것과 다르다' 했다. 토지 계약땐 산을 전부 깎아 단지 내 부지를 평지로 만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부지마다 단차가 있다고 했다. 전체 부지를 다 깎아내면 그만큼 토목공사 비용이 많이 드니 도로만 깎아내고 각 부지들은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헬름협곡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처음엔 어이없었다. 그땐 아이가 어려 디럭스 유모차를 타고 있었는데 그런 아이를 안고 매번 주차장에서 집까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겨울에 얼기라도 하면 계단을 내려가다 크게 다칠 것 같았다. 토목사에 이런 우려를 전달하자 도로에서 우리 부지로 가는 진입로는 평지로 만들어준댔다. 그러면서 계약 다르니 분양가에서 천만 원을 빼준다고 했다.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다음 이슈는 5월 말이었다. 계약 시 빠르면 5월 완공을 이야기해서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땅을 보러 갔는데 토목공사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도저히 끝날 것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사장에게 연락해 보니 비가 좀 길게 와서 7월 즈음 마무리 된다고 했다.
7월이 되었다. 다시 방문해 본 땅은 5월과 다른게 없었다. 장마가 길어져서 9월은 되어야 한다 했다.
9월이 되었다. 도로 준공에 따른 행정 처리가 늦어져서 11월은 되어야 끝난다고 했다. 슬슬 농촌주택개량사업의 제한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선정된 해의 12월 15일 내에 토지를 사거나(소유권 이전을 하거나) 건축물 착공을 해야 했다. 그런데 토지의 소유권 이전은 멀어 보였고, 토지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았으니 착공도 불가했다. 그래도 설마설마했다. 설마 5월에 완성된다는 땅이 12월이 되어도 안될 리가 없다 생각했다. 12월 내에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듬해 4월 완공도 불가했다. 그런데 이런 내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목공사가 끝났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고, 결국 12월 15일 날짜를 넘겨버렸다.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다.
토지의 소유권이 이전되기 전에도 착공은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내 소유가 아닌 땅에 착공을 하려면 토목사 명의로 착공계를 접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 토지 소유권을 이전하면 건축물 명의변경을 통해 공사 중 내 명의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개량사업 제한기간 안에는 내 이름으로 올리는 내 건축물이 아니게 되어 대상자에서 탈락하게 된다.
개량사업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선정 후 지역 농협에 들려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던 그 간의 시간이 헛되이 날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토목사에게 배상이라도 요구하고 싶었지만 의미 없다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 이후 코로나가 끝나며 긴축 정책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2%, 20년 고정금리로 2억을 받았다면.. 하는 생각이 입주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농촌주택개량사업에 선정된 후, 예산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터지니 자금 마련이 난관이었다. 결국 제2금융권에 토지담보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렀다. 당시엔 1 금융권 신용대출 금리가 2% 초반대였는데 2 금융권 토지담보대출은 3프로 후반이었다. 4개월 후 전세금을 받고 바로 갚았는데 중도상환수수료만 250만 원 가량 나와서 아까워 죽을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20일, 토목사 명의로 착공했다. 시공사와 계약한지 360일 만이었다. 집 잘 지어지라고 출근길에 들려 소주도 뿌렸다. 이제 당면 문제는 전셋집을 나오는 4월까지 집이 완공될까이다. 잘못하면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