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의진 Jan 31. 2024

무기력의 비밀

열정을 강요하는 시대, 무기력한 학생이 N포 세대가 되기까지.

이 책은 2016년에 발간된 학교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신과전문의가 쓴 책이다. 책이 쓰여진 당시는, 학교가 전통적인 방식의 교수학습방법을 통한 학생의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얼마나 충실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학교가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학생 한 명 한 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교수학습방법과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학생이 어떻게 하면 더 높은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는가보다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컸던 시기였다. 이 책은 이런 시대적 맥락에 따라 출판되고 학교교육과 관계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무기력이란


저자는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왜 노력하지 않느냐며 다그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기력한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호소한다. 


무기력이란 어떤 지속된 반응의 결과다. 일회성 경험에 의해 무기력에 빠지지는 않는다. 무기력은 장시간의 경험으로 학습된다.


무기력을 학습의 결과로 가정하면, 무기력을 학습하지 않도록 하면 예방이 가능해진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의 패러다임은 예전과 달라졌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일도,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사건이 될 수 있다. 다같은 무기력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지닌 근본적인 원인에 따라 문제도 나타나는 현상도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아이가 무기력해진 사연을 잘 듣고 원인이나 과정이 어땠는지를 파악하고나서 어떤 아이는 계단을 놓아주거나 힘을 실어줌으로써, 또 어떤 아이는 평가하지 않는 방식이나 평가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불안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무기력은 숨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첫째, 인과론적 관점에서 보면 무기력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신분석적 관점에소 보면 무기력은 한 세계의 닫힘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관계론적 관점에서 무기력은 슬픈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내면적 관점에서 무기력은 실망이자 자기학대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생활적 관점에서 무기력은 피로라고 할 수 있다. 여섯째, 트라우마적 관점에서 무기력은 트라우마 상태이며 아이들은 시스템의 부상자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역설적 관점에서 진짜로 무기력한 사람들은 어른들일 수 있다.




무기력 시스템


저자는 무기력에 취약한 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무기력에 취약한 사회의 특징
- 획일적 성공 기준
-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
- 조건적, 평가적 양육 및 훈육 문화
- 극핵가족(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인 사회)


저자는 무기력 시스템을 양산하는 일상의 대회 열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며, 가정과 학교에서의 무기력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였다. 

무기력 시스템을 양산하는 일상의 대화
1. 평가하기 : 잘 하니, 못하니.
2. 비교하기: 걔는 이렇다더라.
3. 조건화하기: 이렇게 하면 해줄게.
4. 다그치기: 그 정도 하고 했다고 하는거야?
5. 혼내기: 혼나고 할래, 그냥 할래?
6. 대신 해주기: 이리줘, 네가 뭘 할 줄 알겠니.
7. 막말하기: 벌레, 쓰레기, 한심한 아이가 되었구나.
8. 사랑 철회하기:이러려고 널 낳고 키운게 아니야.
9. 옛날 이야기하기(꼰대질) :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10. 희망없음 이야기하기: 네가 그렇지 뭐. 어쩌겠어, 할 수 없지.


무기력한 아이들에 대한 해법은 그들이 무능함을 보여주려는 심리기제를 파악하고 여기에 기초해서 돕는데 있다. 무능함을 보려주려는 심리기제는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무능함을 보여주려는 심리기제
- 과잉열망(overambition):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잘 할 수 없다.
- 경쟁(competition): 다른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없다. 
- 압박(pressure): 자기가 해야 하는 것만큼 잘 하지 못한다.
- 실패(failure): 자기가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무기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삽입하였다.

방문객(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첫 번째 방법은 역설과 긍정이다. 역설이란 무장해제를 통해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혼이 날 것을 준비하고 있거나 무가치한 취급을 받을 태세가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상을 뒤엎어 준다. 잔소리가 줄어든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표현해야 한다. 아이가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철저한 수용과 공감을 했다면, 이후에는 아이들에 대한 긍정을 발휘해야 한다.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두 번째 방법은 환대, 참여, 존중이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마치 심장이 정지된 듯 지내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심리적 심폐소생술은 역설적인 접근과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가 통과할 수 있도록 기도확보를 해주고(환대), 실제로 심장이 다시 뛸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하고(참여), 신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인공호흡을 해 주는(존중), 이 세 가지 일이다. 


환대, 참여, 존중은 태도를 달라지게 한다. 환대, 참여, 존중의 시간들이 지속되면 아이들의 태도는 틀림없이 달라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견뎌낼 때까지 역설적인 시도와 환대, 참여, 존중의 심폐소생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던지는 것은 그 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과 만나는 일이고, 괴로운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 일이고,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일이다.


무기력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언의 격려와 언어적 격려다. 그런데 우리는 격려를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별로 없어서 다양하게 격려하는 법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격려조차 할 줄을 모른다. 열심히 하라거나 잘하라는 말은 압박이지 격려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거나 조건을 내거는 것은 격려라기 보다 보상이다. 아들러는 격려(encouragement)를' 아이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실수나 실패를 해도 자존감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격려를 할 때는, 낙담하지 않게 해야 하며, 다시 도전할 마음을 가지도록 해주어야 하며, 주변 사람들이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전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돕는 지원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크고작은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서거나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위기를 넘기고 회복탄력성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그들의 힘으로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역경 극복의 계기는 위에서 말한대로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 따뜻한 어른 그리고 자신과 보조를 맞춰 주는 공감 속에서 일어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어렵고 힘들어하는 과정을 이겨냈다는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회피하면서 버리고 죽였던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결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작은 일에서라도 자신을 이겨보는 경험이다..


둘째, 관계를 통해 도약해야 한다. 익명의 존재였던 아이들을 실명의 존재로 끌어내는 방법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때로는 관계 형성을 위한 집중적인 활동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야영, 캠프, 수련회, 장시간 상핸, 도보 여행 등을 통해 맺어진 최초의 관계가 무기력을 버리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셋째, 성취감이라는 기름을 부어주어야 한다. 무언가를 자신의 힘으로 이룩했다는 경험은 지속적인 전진과 도약의 에너지원이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 가운데 하나가 성취경험이고, 이로 인해 도전욕구가 사라져 있다. 현재 무기력한 상태라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를 되풀이했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자기가 시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갖도록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무언가를 하지 않던 아이가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하면 그것은 무조건 성공이고 성취다. '하지 않는 상태'에서 '하는 상태'로 바뀐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장애물을 극복해냈다는 의미다. 잘 한 것만 성취고 못 한 것은 성취가 아닌 것이 아니라 '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목표는 달성이 가능할 만큼 작아야 성취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성취감은 아이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해 볼만한 일이라고 여기게 하는 자기효능감을 유발한다. 자기효능감은 또다른 성취와 성공의 디딤돌이 된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가장 사랑했던 학생은 학교에 왔다가 그냥 가는 학생이었다. 특별히 훌륭한 학생이나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보다, 교사가 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게 별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교사의 입장에서 무기력한 학생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위기의 신호를 보내지만 않는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부족한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 없이 학생들과 큰 갈등 없이 교직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신건강을 돌보는 의사의 관점에서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지점과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직접 만나고 교육하는 교사의 고민하는 지점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의사의 이야기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며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학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교사들 역시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더 깊이있는 관심이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역시 느껴진다. 


부모로서도 나는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 아이가 겉으로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매사에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이지만, 그 이면에 반복되는 좌절감으로 무기력을 학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도 된다. 이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거대한 이야기로 다기오지도 않지만, 한 사람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세부적인 해설서처럼 느껴진다. 멍때리는 것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나와는 별개로, 내가 누군가에게 노력과 열정을 강요한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이전 13화 학교 체육의 관점에서 보는 스포츠, 경쟁을 통한 배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