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이 어른들 세대가 걱정하는 것처럼 정말 나약한 세대인걸까
고생(苦生) - 어렵고 고된 일을 겪음. 또는 그런 일이나 생활
요즘같은 풍요로운 시대, 세계적인 기준으로 비추어봐도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고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겹게도 들어왔을 말들, 즉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 걱정할 것이 뭐 있냐.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는 류의 문장들 때문에라도 고생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어른들도 좋은 의미에서 하는 잔소리다.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어른들의 마음 속에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아쉬움들을 젊은이들이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그렇게 나타날 뿐이다.
지금의 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했던 걱정들은 걱정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 때는 나도 나름대로 참 힘들었고 걱정거리도 많았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고, 직업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는 등의 미션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는 지금의 나와 그 때의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머리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아이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자녀들의 말과 행동을 대하면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좋은 아빠가 되기는 어렵지만, 좋은 교육자가 될 가능성을 1%라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전에 읽었던 '무기력의 비밀'을 쓴 정신의학과 전문의다. 무기력의 비밀은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있어 읽었던 책이다. 요즘 아이들이 겪는 '무기력'의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었다. 수업을 방해하는 과잉행동을 하는 학생보다는 조용히 앉아있는 무기력한 학생들을 선호하는 교사들도 있다고 하지만, 체육 교육을 하는 나는 무기력한 학생들을 참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무기력의 비밀'이라는 책 속의 내용은 눈에 쏙쏙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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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생의 알고리즘
이 책에서 저자는 무기력 현상과 원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마음 속에 울분이 쌓이며 변해가는 심리와 행동들을 탐구하여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하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울분' 즉 분노가 쌓여 이것이 마침내 여러가지 문제로 발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고생스러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도 아주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는 고생하지 않는 삶인데, 그들은 왜 그렇게 고생스럽다고 느끼는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직접 만난 아이들의 표현을 빌어 요즘 젊은이들의 고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고생이 누적되어 화가 나고 짜증나고 울분이 쌓인다.
엄마 뱃 속에서부터 영어로 태교를 하며 수학문제를 풀기도 하면서 삶을 시작한다. 유치원 때부터는 부모에게 잘 보이려 예쁜 척을 하며, 부모가 보내는 여러가지 종류의 학원을 다녀야 했다. 친척이나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들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마음 졸이며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선행학습을 시작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을 하려니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꾹 참고 노력한다. 중학교에 가니 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더욱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사실은 머리도 좋지 않고 노력은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은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냥 학교에 다닐 뿐이다. 어찌어찌 대학에 가기는 했는데, 대학생활 역시 취업을 위한 성적관리와 스펙쌓기로 전쟁이 계속된다. 극적으로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결혼해서 살아갈 집 구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아이와 같은 느낌이 든다. 미디어에서 들려오는 금수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의욕이 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사는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성취감을 바탕으로 건강한 자아를 쌓아가는 학생들이 아닌, 이른바 '무기력한 학생들'의 사고 구조는 어떤 생각과 경험을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사고의 흐름도, 알고리즘을 다음의 그림과 같이 정리하였다.
저자는 노인 대상 강의에서 접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희망이 넘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엇지만, 사춘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는 절망이 가득함을 발견하며 안타까웠다고 한다. 기성 세대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남아있는 삶 역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을 추구하는 반면에, 요즘 세대의 경우에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좌절의 분위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짚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큰 공감이 가는 부분은 바로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한 경쟁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능력주의는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강화되어, 특정한 능력의 영역에서 기본 혹은 평균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거되거나 제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즉,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바에는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반드시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있다.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의 대부분은 사실 좋은 대학교 입학에 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학생이 입학하는 대학교는 어차피 알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다니던 말던 삶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일부 학생들 문제에 온 나라가 전부를 거는 것같은 분위기가 오히려 황당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진행되는 고통, 고생스러움에 대한 방어기제를 저자는 다음의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순응하는 삶이다. 부모가 시키는대로 살고, 부모에게 구박받으며 살지만, 부모로부터 쫒겨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의존하며 지내기로 하는 것이다. 부모의 모멸이 세상의 박대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한다. 둘째, 무기력하게 지내는 삶이다. 이번 생은 망했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자해하는 삶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기 자신에게 처벌하는 의미로 자해하기도 하고, 그런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자해하기도 하고, 망해가는 삶 속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기에 자해를 하기도 한다. 자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고통을 치환해주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알리거나, 비슷한 친구들끼리 연대하면서 위로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넷째, 중독되어 사는 삶이다. 자신의 삶을 즐겁고 재미있게 살 수 없다는 이 현실로부터 도주하고 싶기에, 게임을 포함한 온갖 현실같은 비현실에 빠지는 것이다. 다섯째, 은둔하는 삶이다. 이번 생애에 남과 어울려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망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섯째, 비행을 일삼는 삶이다.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기는 틀렸다는 느낌이 파괴적으로 변한다. 마음 안에 있는 부적절함, 부족함, 미안함 이런 것들이 모여서 수치심으로 자리잡아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기분으로 지내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의 특징
중학생의 특징을 규정하는 20개의 문장
아이들의 호소
저자는 아이들의 호소를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① 마음 둘 곳이 없어요!
② 내일은 과연 오늘보다 더 나을까요?
③ 그냥 학년에 맞게 공부하면 안 되나요?
④ 다 포기하고 싶어요
⑤ 우리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요
'다 포기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부모 세대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이들이 원하는 관계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관계를 훨씬 더 중시한다. 기성세대가 일, 성과, 생산물을 더 중요시했던 것에 비해 지금의 아이들은 관계, 과정, 평판과 인정이 더 중요하다. 르개서 아이들을 인정하고 아이들과 호감을 나누고 유대를 맺을 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만남을 고대하지만, 정작 만나게 되면 생경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예민하거나 방어하고 숨어버리는 일도 많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남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남
① 우리들의 새로운 문화를 이해해 주세요
② 만남에 집중해 주세요
③ 존중하며 잘 들어주세요
④ 일단 한 편이 되어주세요
⑤ 압박하거나 채근하지 마세요
⑥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아주세요
부모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어렵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어렵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대화를 잘 해야 한다. 저자는 '아이들과 멀어지는 대화법'과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대화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획일성의 시대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저자는 결국 어른들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우리 사회를 만들어낸 능력주의, 승자독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사회는 부유하지만, 다수의 개인은 가난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의 체제에서 아이들은 점차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체제의 가치를 '획일성'으로 정의하며, 미래에 지향해야 할 가치로 '다양성'을 강조하였다. 저자가 정리한 획일성의 시대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넘어가며 지향해야 할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전제로 부모가 아이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하였다.
이 책은 우리 대한민국을 '심리적 위험 사회'로 규정하였다. 기성세대나 젊은세대나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고한다. 심리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책인줄 알았는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즉 집단적인 의식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청소년들의 일탈, 특히나 인간으로서의 도를 넘어서는 범죄행위 등을 접할 때마다 각 개인에 대한 엄벌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는 맥락이 조금은 다른 듯 느껴졌다. 아마도, 이는 저자가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갖게 되었던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저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쉽사리 판단할 생각도 하기 어렵다. 다만, 저자가 주목하는 학교 문화의 문제점에는 크게 공감하였다. 수능 킬러문항 이슈부터, 의대 정원 문제, 수능 난이도 문제 등은 말 그대로 극소수만이 성취할 수 있는 문제임이 분명함에도 마치 엄청나게 큰 일이 난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언론과 사람들의 집단의식에 대한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왜 우리는 일반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보다, 극소수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클까. 많은 교육자들이 학교에서 만큼이라도 대다수의 학생의 미래에 대한 문제, 대다수의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실제로 많은 정책들이 실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사회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믿음이 신화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가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진 체제의 편리함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성공의 방정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경쟁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훌륭한 지도자들도 해내지 못한 문제인데, 나 따위가 고민을 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저자가 바라는 것은 우리네 학교에서 교사들이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시적인 문제는 거시적인 문제일지라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들이 바람직한 삶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부터 해야한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바로 그 것이다. 학교 현장의 수 많은 교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미래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사회를 즉시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학생들이 가까운 미래에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교육활동을 한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의 기대감을 가지고 내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있다는 느낌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나역시 자녀를 보면 가끔씩 속이 터지게 답답한 부모이기에 더욱 어렵고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