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왜 활을 잘 쏘는 것일까
양궁인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은 우리나라 양궁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학교체육 측면에서 양궁 문화가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시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혹시, 비 전문가의 시각으로 쓴 글에 불편한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스포츠의 세계에는 종목마다 오랜 기간 동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팀이나 국가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지만 결과를 너무나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종목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농구 남자 대표팀(일명 '드림팀')이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은 더 이상 이야기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미국 농구 드림팀이 패배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이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이런 종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양궁(Archery)'이다.
https://tv.naver.com/v/4252855
'클래스'가 다른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
1984년 올림픽부터 2016년 올림픽까지 모두 9번의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모두 39개의 메달(금 23, 은9, 동7)을 획득하였다. 가장 최근의 2016년 올림픽에서는 양궁 종목에 배정된 4개의 금메달을 모두 획득하기도 하였다. 삼십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올림픽 양궁 종목을 지배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경기 방식이 수 차례 변경되기도 하였고 한국 양궁을 벤치마킹하는 팀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특출난 재능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결과가 우리나라 선수들의 승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특정한 선수의 재능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기술과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스포츠 문화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록은 더욱더 놀랍다.
https://www.youtube.com/watch?v=1VaHZXY5e4g
https://www.youtube.com/watch?v=1JSFLeNUeko
우리나라 양궁이 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인 결론이 궁금하지는 않다. 그냥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더 궁금할 뿐이다. 오랜 기간동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것은 분명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에, 대한민국 양궁은 재미있는 연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양궁이 이렇게 잘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으며, 그들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내용을 보면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영어를 몰라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것 같다. 첫째, 우리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높은 수준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다른 나라 선수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축적하며 성정한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 나라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탁월한 심리적 관리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는 판단할 역량이 없어 논외로 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무엇인가 특별한 우리만 알고 있는(외부에 알려줄 수 없는...) 비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3bOhPVGt-wU
https://archery360.com/2016/11/02/4-reasons-korea-dominates-archery/
https://thebowguy.com/korean-archery/
개인적으로 진짜 궁금한 부분은 우리나라 양궁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아니라, 양궁 종목에서 다른 종목에 만연한 부정적 이슈들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내부 사정은 모르겠지만, 담당하고 있는 업무적으로나 언론에서 접하는 소식이나 양궁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이슈들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 어떤 종목보다도 더 치열한 경쟁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양궁이라는 종목에서 이렇다할 부정적 이슈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공정함이라는 미명 하에 어린 학생들을 무한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다면, 경쟁에서 도태된 학생들은 당연히 어려움을 겪게되기 마련인데 그런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없다.
경험적으로 보면, 양궁 훈련장에 방문하여 훈련하고 있는 학생들의 분위기는 밝고 가벼운 분위기인 경우가 많았다.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인데다가 사고의 우려도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고 있을법도 한데,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양궁 훈련장에서 학생들은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궁이라는 종목의 핵심이 정신을 다스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좋은 스포츠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은 아닌지 멋대로 추측해본다.
우리나라 양궁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은 어디에서 나올까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양궁 선수들과 양궁 협회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칭찬하는 내용이거나 긍정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느끼기에(물론 과학적인 연구 근거는 없다), 이러한 내용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공정한 경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종 비리와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유독 청정하고 합리적으로 보여지는 스포츠로서의 양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양궁계의 내부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언론에서도 그렇다고 하고 사람들도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며, 경험적으로도 그런것처럼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경기의 내적인 요소에서도 개인의 역량 외에 개입될 요소가 최소화되어 있는 스포츠가 바로 양궁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vJJm4e02Ac
먼저, 양궁 특유의 '경쟁'하는 방법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 같다.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양궁 대표선수가 되기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화살을 쏘며 기록을 경쟁해야 한다. 유튜브 올림픽 채널에서 만든 영상 속 장용호(2004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나라에서 1년에 참가하는 대회에서 쏘는 화살의 수와 우리나라 1개 대회에서 쏘는 화살의 수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통계적으로 수집하는 데이터의 수, 즉 표본의 수가 많으면 연구의 신뢰도가 올라가기 마련인데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양궁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발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발 시스템은 우리나라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양궁 대표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기에, 나이가 적거나 국제대회 경험이 적다고 하더라도 양궁 선수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이 매번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즉 우리나라 양궁 선수의 '클래스'를 유지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https://www.youtube.com/watch?v=fPVFPRStToo
사람들이 주목하는 다른 하나의 부분은 바로 '공정'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많기에 양궁의 공정함이 주목받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양궁이라는 경기는 분명 본질적으로 편법이나 반칙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실제로 학교에서 수업을 했을 때, 평가결과에 대한 이의가 거의 없었던 수업 중 하나가 바로 양궁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공인된 결과가 아주 명확하게 그것도 즉각적으로 나오고, 자신의 오류를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곧바로 수정하여 적용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양궁이기 때문이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높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경기를 하고 있으리라 감히 추측해본다.
사람들의 양궁에 대한 신뢰는 분명 다른 스포츠 종목과는 다른 것 같다. 가끔씩 양궁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론은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었다. 축구 대표팀 경기에서 실수 한 번 한 선수가 온갖 창의적인 표현의 욕을 먹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이례적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대한민국 양궁에 보내는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양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자부심과 기대감까지 녹아들어 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양궁의 저변
사람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경험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학교 체육 수업이며, 다른 하나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참여하게 되는 생활체육이다. 체육 교사로서 체감하기에 양궁 수업을 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어렵지만 실제로 수업을 운영하는 것은 더 어려우며, 안전제일주의의 학교에서 큰 사고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물론, 나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스포츠를 공식적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학교체육을 통해 양궁의 저변이 더 넓어지리라 확신하며 기대하고 있다.
생활체육으로서의 양궁은 어떨까. 통계자료를 본 적도 없고, 활발한 생활체육활동을 하지도 않는 사람으로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다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양궁의 이미지가 ‘선수들의 멋진 모습’에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 경험’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든다. 내가 5년 전에 양궁 관련 자료를 찾아다닐 때만해도, 대부분의 자료들이 전문적인 양궁 선수 코칭과 관련된 것들이었다.지금은 포털에서 양궁을으로 검색하면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양궁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V-log 라는 새로운 문화가 확산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양궁을 할 수 있는 곳이 주변 어딘가에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선수로서의 진로를 찾아가는 전문적인 수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 역시 그리 많지는 않다. 당장,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특별시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내만 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양궁을 하는 학생들의 수는 굉장히 적다. 서울의 11개 교육지원청 중에 학생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운동부 양궁부를 운영하는 학교의 수는 한 손으로 세는 것이 가능하며, 등록된 학생선수의 수 역시 많지 않다. 등록선수의 수가 적다는 것은 인재 풀이 적다는 것일테고, 당연히 훌륭한 선수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울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지. 정말 풀리지 않는 신비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숫자와 비율로는 우리나라 양궁의 놀라운 수준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는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있는 양궁 경기장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양궁 인프라 수준이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양궁장(아무 양궁장이나 소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황은 다음과 같다.
https://www.archery.or.kr/archer/archer/information.do
미디어 속의 양궁
대중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노래가 하나 있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뭐, 이런 식의 가사였다.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딸 때마다 장엄하게 울려퍼졌던 노래다. 이제는 더 이상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저 노래가 울려퍼지던 당시에만 해도 미디어에 나오는 메달리스트들은 국가와 민족의 영웅으로 그려졌다. 자신의 재능을 펼쳐서 스포츠 경기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을 뿐인데, 전쟁터로 나가서 우리나라의 명운을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켜낸 한 명의 장군처럼 느껴질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 양궁의 압도적인 성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신화로 칭송받았던 느낌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wgv2E0rUDc
요즘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도 우리의 친구이자 가족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브이로그 시대, 짧고 재미있는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단순한 영웅만들기 식의 접근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도 아래와 같은 느낌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Av0fGvfxhiI
언젠가부터 명절 때면 TV로 찾아오는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는 체육 교사들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학습자료였다. 우사인 볼트의 역사적인 스피드에고 반응하지 않던 학생들이 아이돌의 멋진 달리기에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높이뛰기 수업에도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아육대였다. 그런 아육대에 다른 종목들이 하나씩 추가되더니 어느날부터 양궁이 추가되었다. 부상의 우려도 없고 무엇보다 멋짐이 뿜어져나오는 모습에 스포츠에 문외한인 아이돌 팬덤도 엄청나게 반응했던 것 같다. 트와이스 쯔위의 머리를 휘날리는 장면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인 짤방으로 인터넷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 같다. 쯔위한테 정말 고마운 것은 단순히 예쁜 것을 넘어서, 자세 자체가 정말 좋아서 별도의 편집 없이도 양궁 학습자료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쯔골라스’의 멋짐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몽의 후예, 활의 민족’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이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공감을 하고 있다. 정사 속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TV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우라가 백발백중의 활 솜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이순신 장군의 카리스마는 원래 활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도 있다. 활쏘기가 역사적으로 체육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양궁이 학교체육을 통해서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