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재미있는데 얄팍하거나 가볍지 않은,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온라인 독서 플랫폼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오디오북 기능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만 꽂고 있으면 눈으로 보아야 하는 글을 귀로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출퇴근길 콩나무 시루같은 지하철 안에서 버티고 서있을 때면 특히 더욱 좋다. 귀로 들을만한 책들을 스크롤 하던 중, 어디선가 보았던 이의 얼굴로 만들어진 책의 표지가 보였다. 박정민이라는 배우였다. 궁금했다. 젊은 배우가 책을 내는 일이 흔한 일인가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검색해보니, 젊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87년생의 30대 후반 나이였다. 이른바 대학을 잘 보내기로 유명한 지방의 기숙형 사립고를 졸업하여 고려대에 입학했다는 학력을 보고는 명문대 출신의 연기자로 주목받은 전형적인 케이스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고려대를 자퇴한 후, 한예종 연기과가 아닌 영화과에 들어갔다는 그 이후의 이력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또 결국에는 감독이 아닌 배우가 되었다. 더 살펴보니 감독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쓴 글은 어떤 내용일까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귀로 오분 정도 듣다가 뭔가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책이라는 느낌이 왔다. 결국, 눈으로 봐야겠다 싶어서 태블릿을 켜고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글을 참 재미있게, 맛깔나게,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쓰는 천재적인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니 찌질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자기만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솔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책이었다.
모바일 세상의 트렌드에 편승하여 최신 유행 중인 단어와 표현을 쓰다가도, 작가의 나이대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공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능수능란하게 기어를 변속하며 운전할 줄 아는 베테랑 드라이버처럼, 자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느낌이었다. 한예종에 불합격한 후,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해 1년 동안 노력했다는 전략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진부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책을 읽어보니,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이 사람이 연기를 잘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기면서 주고받는 대화 사이사이에 넣은 짧고 솔직한 문장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실제로는 부끄러워서 차마 입 밖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 책의 박정민이라는 작가는 아주 속 시원하게 자신의 찌질한 생각을 드러내준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에서 이 책의 주 독자 층이라는 20~30대 여성들이 박정민이라는 배우에 빠져들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힘 내라. 나같은 찌질한 놈도 잘 산다. 너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람이야.“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배우로서 명성을 얻기 전부터의 본질적인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신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싶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선배들이 모습을 닮아가는 자신이 부끄럽지만, 그렇게 변하지 않고 초심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항변에 큰 공감이 되었다. 만약, 이 책이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친근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허구라면 천재적인 능력일테고, 이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또 그것도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천재적인 역량일테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를 보면 놀랍기만 했지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는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연기도 잘 한다니 부럽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