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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보고서

공무원은 어떻게 일하고 글을 써야 하는걸까

by 김의진

글쓰기는 모든 공무원에게 중요한 핵심 역량이다. 주요 현안을 긴급하게 보고해야 할 때면 빠르게 내용을 요약하여 산속하고 정확하게 핵심을 보고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나, 정기적으로 기본 계획을 수립할 때도 문서 보고와 결재는 필수적인 일이다. 즉, 공무원은 끊임없이 글로 써서 직무 단위와 직급에 따른 상사에게 보고하여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교육을 해주는 시스템은 정교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은 듯 하다. 사전에 가르쳐 주기보다는 과거에 전임자들이 썼던 글을 참고하여 일단 써 오면 선배나 상급자가 함께 보면서 첨삭을 해 주는 ‘실무적인 도제교육’ 형태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거쳤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인재 선발 시스템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보고서를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노력과 연구를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전에 근무하던 부서에서는 칭찬을 받던 모범적인 보고서가,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는 기본도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혹평을 받는 순간도 있다. 전형적인 관료로 살아온 상급자의 눈과, 선출직 기관장에 의해 임명을 받은 공무원 경험이 없던 상급자의 눈이 전혀 다를 때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상황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공무원등이 많다. 물론, 모든 상황에 적합한 정답, 즉 ‘표준화된 단 하나의 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럴 땐 이렇게 쓰고 저럴 땐 저렇게 써야 한다는 대략적인 표준화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그리고 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매뉴얼을 만들기까지의 과정도 기록하여 안내하면서,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했다.




책의 전반부는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보고서를 쓰는 구체적인 방법과 사례를 제시하면서, 왜 이렇게 써야하는지를 설명한다. 교육청에 들어와 수 년의 시간 동안 이른바 ‘행정 관료’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보니, 나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체화된 보고서와 기획안의 틀이 본능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다른 서식을 특별히 가져오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에 보고서의 얼개는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그동안 수 많은 상급자를 만나고 보고를 이어가면서, ‘공무원의 글쓰기'와 관련하여 머리 속에 자리잡은 나름대로의 지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식의 정답은 없지만 상급자가 선호하는 서식은 있다. 교육부 서식, 교육청 서식, 부서별 서식, 사안별 서식은 모두 다르며 상급자의 경력을 고려하여 취사선택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식은 그만큼 중요하다.


둘째,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핵심을 전달해야 좋은 보고서다. 그래서 한 장 글쓰기, ‘원페이퍼’가 강조된다. 본 기획안과는 별개로 추가되는 원페이퍼를 만드는 일을 타파해야 할 악습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고를 받는 사람의 직급이 높을수록 이것은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된다. 우리의 일을 잘 알고 있는 부서장과는 달리, 우리 조직의 기관장 등은 매일같이 분단위 일정을 소화하며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보고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고서를 잘 쓰고 설명을 잘 하는 사람은 소중한 시간을 아껴쓰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며 구별되는 사람이다. 실제로, 보고서 작성 역량을 인정받아 특정한 자리에 불려가게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셋째,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한 보고서도 기관의 정책 추진방향에 부합하지 않으면 높은 평가를 받을수 없다. 우리 팀의 논리와 우리 부서의 논리는 다를 수 있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서의 업무 추진 방향과 우리 기관 전체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다르면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기존에 하던 업무가 옳은 방향이었다면, 이 일이 왜 우리 기관 전체의 방향에 부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보고서를 써내야 계속 그 일을 추진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공부를 하게될 수밖에 없다. 사안의 기원부터 모든 맥락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쓰는 보고서와 일부만 알고 있는 사람의 보고서는 분명히 설득력의 차원이 다르다.


내가 만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청 장학사라는 역할을 하면서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이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다. 이 책의 전반부가 정확하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 큰 공감이 되었다. 지난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안도감도 들었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교육 체계는 왜 없었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다르게 생각를 해보면, 교사 시절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를 공감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공무원 조직 사회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선출직 공무원들을 접해보지 않았다면,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경험이란 그만큼 중요하다.


책의 후반부는 왜 표준화된 보고서와 문서 기록 시스템을 고민하였으며, 어떻게 시스템을 개선하였는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과정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일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5년의 임기 후 청와대 사람들은 바뀌더라도, 자신들의 고민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선출직 기관장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치적을 남기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일반적인 공무원이 자신들이 얼마나 열심히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하여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의지같은 것도 느껴졌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자문서시스템은 20여년 전 ‘인트라넷’이라고 불리던 군 내부망이었다. 전자문서 도입과 개선 과정을 학교와 교육청보다 군에서 미리 경험했다. 시스템 도입 초기에 과거의 수기 공문 서식을 그대로 전자문서 서식으로 만들어 어색했던 점들이, 국제 표준에 따른 서식으로 개선되며 자연스러워진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고, 그것이 우리의 옳은 방향이라고 결정되면 즉시 추진하여 시행할 수 있는 군사조직의 특수한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군의 본질은 수천년동안 변함이 없었겠지만,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여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조직이 군이라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군에서 초급 장교로 전자화된 형태의 문서로 행정을 했던 경험은, 전역 이후 지금까지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큰 힘이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장학사 초년에 추천을 받아 읽으려 시도했다가 덮어버린 책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류의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고 힘들었다. ‘이런 형식 따위가 뭐 중요한가?’하는 교사 시절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몇 년의 시간과 경험이 버무려진 지금, 불현듯 생각나서 읽어보니 공감이 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그만큼 내가 진정한 꼰대에 가까워졌기 때문인 것 같아 웃음도 나온다. 보고서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유가 있을 때 한 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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