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나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의무감으로 수행하는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 읽고 나서 별로였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숙제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 이럴 때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고르기보다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을 읽는 일이 더 많다. 몇 주째 어떤 책을 읽고 싶다기보다는, 아무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책무성을 부여하며 책을 선택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책을 읽어내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은 많이 읽혀진 책 상위 랭킹에 올라 있는 책이었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 특성 상 주 사용자는 20~30대 여성인 듯하다. 지금까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대부분의 책들이 그랬다. 40대 남성을 위한 책이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끝까지 읽었다.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내용이 뭔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라면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최근 인기를 끌었다는 드라마 속 대기업 부장님의 삶도 비슷한 맥락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들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이 몇 년을 주기로 마음이 이끌리는 선택을 하며 겪어 온 우여곡절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작가는 잘 나갈 쯤하면 안정된 선택보다 마음이 이끌리는 선택을 반복하는 로망을 실현한 사람이다. 유망한 직종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그 유망함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주식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작가의 지나온 삶은 손절의 타이밍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갈아타는 옳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선택의 순간과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영적인 깨달음을 반복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아주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책의 구성은 간결한 에세이가 누적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무언가 온라인 공간에 주 단위 또는 월 단위로 연재되는 글처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에필로그에서 브런치에 올린 글을 모아서 출판한 책이라고 말하였다. 지금 나처럼 온라인 공간에 글쓰기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 역시 글쓰기를 통해서 힐링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보려고 쓰는 글도 아니고 남들 보라고 쓰는 글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힐링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할 것도 없는 날 것의)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잡글이라도 계속 글을 쓰게 되고, 글감이 없더라도 글을 쓰고 싶으니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기독교인으로써 본능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어느 정도는 알아챌 수 있다. 이 책의 작가가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가지 에피소드 사이사이에서, 특히나 해외에서 살아가면서 교회 생활을 통해서 버텨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불자들도 한인 교회에 나가서 커뮤니티의 따뜻함에 의지를 하고, 또 그만큼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는데 작가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삶의 변곡점마다 있었던 새옹지마와 필요한 것들이 결국에는 준비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신앙이 더욱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는 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신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전파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느껴지는게 신기했다. 글을 참 잘 썼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고, 글을 쓰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처럼 못 배운 한과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하여 미친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발견한 지혜를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인류의 지식으로 만들고자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장학사가 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삶의 선택과 이에 따른 결과 중에 내가 원했던 기대했던 것은 얼마나 될까.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