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하면 뉴질랜드 All Blacks, 그리고 로무
스포츠 종목에 입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스포츠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스포츠라면 그 오랜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럭비 역시 그렇다. 럭비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축구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로 폭발하였다. 영국에서 시작된 축구는 브라질에서 꽃을 피워 그 매력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축구에 브라질이 있다면, 럭비에는 바로 뉴질랜드 '올 블랙스(All Blacks)'가 있다.
럭비의 나라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 '올블랙스(All Blacks)'
럭비라는 종목의 세계관에서 축구의 브라질 정도 되는 팀이 바로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 'All Blacks'다. 나의 럭비 문화에 대한 앎의 수준이 워낙 얕고도 좁아 길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해보자면 올 블랙스라는 애칭의 기원은 유니폼의 색 때문이다(여담이지만, 하얀 유니폼을 입는 뉴질랜드 축구 대표팀의 애칭은 '올 화이트'라고 한다.). 검은 옷을 입은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기의 색깔이 있었고, 그들만의 정신이 녹아있는 럭비 문화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뉴질랜드 올 블랙스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팀, 가장 인기있는 팀이 되었다고 한다. 실력 또한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부터 시작된 럭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3회 우승을 차지한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UTqrRAa-qQ
하카(haka)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춤이자 의식이다. 여러 명의 사람이서 문학적인 구호를 함께 우렁차게 외치고, 혀를 내미는 동작과 위협적인 표정을 보이며 발을 구르고 허벅지와 가슴을 박자에 맞춰 격렬히 치며 춘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 부족(iwi)마다 다른 형태의 하카를 가지고 있으며, 각 부족에는 성별과 상황에 맞게 다양한 하카가 존재한다. 전투 전 사기 고양을 위한 전투 하카(페루페루, peruperu)가 유명하며, 또한 이웃이나 손님을 환영하는 하카, 혹은 장례식에서 망자를 추모하거나 결혼식에서 부부를 축복하는 등 큰 행사를 위한 하카도 있다. (*출처-나무위키)
올 블랙스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경기 시작 전에 보여주는 '하카(Haka)'에 있다. 올 블랙스는 경기 시작 전 하프라인 앞에서 상대팀을 향해 하카를 선보이는 전통이 있다. 인상적인 장면은 올 블랙스가 하카를 하는 동안 상대 선수들이 모여서 하카를 그대로 받아주는 모습에 있다. 이것이 단순히 역사적으로 전통이 되어버린 일종의 불문율인지, 아니면 관련된 규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 블랙스의 하카는 워낙 유명해서 이것이 마오리족의 전통이 아니라, 럭비 경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KFYTFJ_kw
올 블랙스의 가장 일반적인 하카는 '카 마테(Ka mate)'인데, 그들이 외치는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Ka mate
Ka mate! Ka mate! Ka ora! Ka ora!
Ka mate! Ka mate! Ka ora! Ka ora!
Tenei te tangata puhuru huru
nana nei i tiki mai whakawhiti te ra
A upa... ne! ka upa... ne!
A upane kaupane whiti te ra!
Hi!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나는 산다! 나는 산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나는 산다! 나는 산다!
이 자는 두려운 남자다.
태양을 가져온
그리고 다시금 빛나는 자이다.
한 사람이 전진하면 다른 사람도 전진한다.
전진, 또 다른 전진... 태양이 빛난다.
히!
https://www.youtube.com/watch?v=ZQL42eV5NWI
나는 '카마테' 하나의 하카만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역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하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카를 보면 알겠지만, 이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아이돌 칼군무 정도는 아니겠지만, 하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연습도 많이 필요하고 한 번 하고나면 에너지도 엄청나게 소모하게 된다. 하카의 종류와 동작의 의미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 글이 있어 링크로 공유해본다(아래 링크 참고).
하카의 역사와 종류 (*출처-스포츠콕 홈페이지)
럭비의 아이콘, 로무
요즘 사람들은 '축구'하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나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이야기한다. 예전 사람들은 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두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다른 종목에도 전설적인 선수의 수준을 넘어 해당 종목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선수들이 있다.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사람 우사인 볼트, 물고기 인간 마이클 펠프스, 피겨여왕 김연아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럭비에도 이런 인물이 있다.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조나 로무(Jonah Lomu)'가 바로 그런 존재다.
로무는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더니, 치명적인 병으로 인하여 은퇴했다가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 돌아왔다. 그리고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뒤로 하고 영원한 별이 되었다. 스토리만 보면 이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럭비의 'R'자도 제대로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럭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로무의 존재를 알 수 밖에 없는 그런 선수였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내 세대의 가장 임팩트있는 축구선수 호나우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예전에 호나우도가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20세 시절,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이 '호나우도가 전술이다.'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느꼈던 호나우도의 카리스마는 '공 줘봐. 내가 넣고 올게.'라는 아우라였는데, 로무가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나이, 종목은 다르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임팩트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대단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잘 아는 유명인으로 비유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장 196cm 체중 약 120kg의 근육질 사나이, 프로레슬러 출신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이 100미터를 10초에 달려오는 속도로 나에게 돌진해 온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이런 장면을 맞닥들이게 되면 엄청난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에 머리 속이 어지럽게 될 것이다. 거짓말같지만, 악당들을 시원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드웨인 존슨의 영화처럼 실제로 요나 로무가 럭비 경기 안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구들이 말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그의 모습에 모두 열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봤던 정식 럭비경기 비디오 테잎 영상 속에서 처음 본 선수가 바로 로무였다. 럭비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 특별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 선수가 대단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기 영상을 보여준 선배가 말했던 이름, '로무'.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럭비 경험도 부족하고 좋은 선수를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도 없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는 그냥 저절로 깨달을 수 있는 정도의 임팩트가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럭비를 아주 잠시 해 봤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선수도, 조니 윌킨슨(잉글랜드), 우마가(뉴질랜드) 정도밖에 없는 수준이다. 이런 수준의 내가 아무리 설명해봐야 왜곡된 정보밖에 제공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설적인 럭비선수 로무의 위대함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영상으로 직접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1hJyjPLRDc
로무는 단순히 보여준 퍼포먼스만으로 전설이 된 선수가 아니다. 어느 날 TV에서 로무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바로 아디다스 'Impossible is Nothing' 캠페인 광고에 나온 모습이었다. 광고의 내용에 따르면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신장병으로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중단하게 되었고, 선수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문제였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광고를 접하기 전까지만해도 1995년 월드컵 경기 장면, 1999년 월드컵 경기장면을 통해서만 로무라는 선수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이런 몸으로 그런 플레이를 보여주었다니, 몸이 멀쩡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을까. 여러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내 이름은 조나 로무.
최고의 신장 전문가들이 내게 말했다.
남은 평생, 휠체어에 앉아 지내야 할지 모른다고.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럭비선수에게 하루 8시간 일주일에 6일 동안 기계를 매달고 있으라니...
그래서 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난 포기하지 않고 내 안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힘을 발견했다.
그 후 3년 동안 모두가 안 된다고 말렸지만 난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지금 이 순간까지 싸우고 또 싸웠다.
나의 삶은 순간순간이 투쟁이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디다스 광고 캠페인
https://www.youtube.com/watch?v=YA_3CuidTa4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인터넷 뉴스를 통해 로무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정말 피상적인 내용밖에 알지는 못했지만, 말 그대로 럭비의 전설이 되기 위한 삶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같다는 느낌만 남았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 가본 적도 없고 그들의 문화도 잘 모르지만 그의 장례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카'를 하며 로무를 추모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d3v0CPXJA
스포츠에 입문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해당 종목의 슈퍼스타, 또는 당대 최고의 레전드 이야기를 통하는 것이다. 럭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로무의 인생과 전설적인 퍼포먼스는 충분히 의미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올 것으로 확신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LcgGSCkLo
1995년 럭비 월드컵과 영화 '인빅터스(Invictus, 2009)'
인종차별을 극복한 평화와 화합의 상징적인 인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있었다. 평생을 정치적으로 탄압받았던 그였지만,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핍박했던 백인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의 스포츠였던 럭비를 통해 흑과 백으로 갈라져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는 1995년 럭비 월드컵 대표팀을 흑인과 백인을 모두 포함한 팀으로 구성한 것이다. 백인들은 백인들의 스포츠에 흑인이 들어온 것을 못 마땅해 하였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출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Springboks)'는 만델라의 기대처럼 점점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월드컵 첫 출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결승전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로무의 뉴질랜드 올블랙스. 모두가 올블랙스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남아공 스프링복스 선수들의 놀라운 투혼은, 뉴질랜드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내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그들은 세계 최강 올블랙스를 꺾고 기적처럼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동화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1XSFU5u_6k
거짓말 같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 즉 역사다. 바로 이 영화같은 이야기는 진짜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믿고 볼 수 있는 두 배우 모건 프리먼, 맷 데이먼이 나오는 포스터만으로도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솔직히, 영화는 학생들 입장에서 지루할 수 있는 너무나도 담백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마지막 결승전 경기 장면은 럭비 경기를 이해하기 쉽게 잘 재현해 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럭비의 정신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영화 인빅터스. 러닝타임이 길기는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참 좋은 스포츠 영화다.
솔직히 럭비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우연히 럭비를 시작했고, 즐겁게 빠져들었다. 졸업 이후 럭비를 잊고 살다가 학교 현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면서 럭비형 스포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달았었다. 수업을 하지 않게 된 이후로 다시 럭비를 잊고 지냈다. 꼰대가 되어서 돌아보니, 럭비라는 스포츠의 가치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럭비의 대중화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육적 가치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체육에서 럭비가 더욱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