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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ug 29. 2021

미래의 학교체육 #1 - 빅데이터와 체육교육

미래교육은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2020년, 먼 미래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 깊숙하게 다가왔다. 아무런 대책 없이 시작된 미지의 감염병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하였고, 우리의 일상 중 거의 대부분을 변화시켰다. 필요한 기다림이 잠시의 시간이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수 개월의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학교는 원격 수업을 시작했고, 교사들은 어떻게든 원격수업을 해냈다. 우당탕탕 시작되었지만, 2년의 시간 동안 교사들도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원격수업에 익숙해졌고 교육 당국 역시 정규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어떻게든 원격수업이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수업을 한다고 해서 보다 내실있는 미래지향적인 수업이 된 것일까. 우리가 꿈꾸던 미래의 학교 모습이 과연 각자의 집에서 모니터를 통해서 수업하는 것이었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수 천년 학교 체육 교육의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원격 체육 수업의 모습이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대한민국 1호 미래학교 창덕여자중학교, 그리고 미래학교 프론티어 교사단


2015년 3월 1일. 「교육부에서 지정한 대한민국 최초의 미래학교 창덕여자중학교」가 출범하였다.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가장 일반적인 학교에서 미래교육의 모습을 연구하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미래학교 지정을 받고 미래교육을 하겠노라고 선언을 했다고 해서 미래학교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중등 교원 정기 전보 때마다 전입교원의 100%를 학교가 요청할 수 있도록 하여 미래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창덕여자중학교로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교장, 교감, 교사 본인 등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인사원칙에 따라 교원 인사가 이루어지는 공립 중등학교에서 매년 100%의 전입 교사를 학교에서 지정하여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지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미래학교 연구를 위해 매년 교사들이 모여든다고 해도 5년에 한 번 찾아오는 정기전보를 감안하면, 모든 교원이 미래교육 연구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당장 출범하는 미래학교의 수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교육청의 선택은 미래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을 각 교과별로 모집하여, 창덕여자중학교에서 각 교과별로 미래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연구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2014년 하반기, 이렇게 '미래학교 프론티어 교사단'이 출범하였다. 그리고, 멋 모르고 열심히 까불고 다니던 내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공교육에서 실천한 미래교육 이야기 대한민국 1호 미래학교 (2020, 창덕여중 공동체. 푸른칠판)


창덕여자중학교는 탑다운 방식의 미래학교를 추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미래학교'라는 개념은 정의된 적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었으며, 성공적인 사례라고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학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리모델링 계획 단계에서부터 각 층별 공간의 구성, 심지어 페인트 색상 구성까지도 창덕여자중학교가 생각하는 미래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고자 논의하고 또 논의했다. 창덕여자중학교가 지향해야 할 교육 철학부터 학교문화까지 급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수 년 간에 걸친 이른 바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를 통하여 만들어 갔다. 학교 밖에 있을 때는 이러한 부분을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창덕여자중학교의 구성원이 되어서 경험해보니, 창덕여자중학교가 성공적인 미래학교라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수업 등의 외형적 모습'이 아니라 '미래학교를 만들어 가는 학교문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덕여자중학교 구성원들의 시행착오와 그들의 이야기는 매년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연구보고회와 연구보고서로 다음과 같이 남아있다.



「미래학교 프론티어 교사단」은 각 교과별로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미래에 내가 근무하고 싶은 학교에서 실천되었으면 하는 수업의 모습을 꿈꾸며 전문성을 발휘한 연구를 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했던 교사로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다른 교과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적극적으로 융합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가능한 학습활동을 더 넓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I.T. 기업의 해커톤 행사처럼 진행되었던 워크숍에서 다른 교과 교사들 앞에서 미래 체육 수업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 다른 교과에서 구상하는 미래학교의 수업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우리가 그리는 미래학교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구체화하는 배움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맞는 또래의 체육 교사들이 모여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함께 미래의 체육 수업을 상상하며 수업자료를 만들고 지도안을 만들었던 경험은 이후의 내 체육 수업에 직접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에서 보는 우리의 시각에서 창덕여자중학교의 체육 교과 수업이나 학습환경은 아쉬움이 컸다. 한 학급 15명 정도 학생수를 가진 여자 중학교, 지은지 70년이 된 가로세로 15미터에 불과한 작은 강당(체육관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우리의 구상과는 거리가 있는 체육 교과 평가계획 등 겉으로 드러난 체육 교육 환경은 미래학교라기보다는 과거학교에 가까웠다. 우리 중 누구도 밖에서만 아쉬워할 뿐, 감히 창덕여자중학교에 직접 들어가서 체육 수업을 개선에 도전하지는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미래학교 출범 이후 2년이나 지속되었다. 미래학교 프론티어 교사단의 체육 교과 교사들 중 가장 역량은 부족한 나였지만, 2년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2017년 3월에 창덕여자중학교 교사로서 미래학교 교사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짧은 교직 생활 중 최선의 선택이었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답이 아닌 방향과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렇게 미래학교의 체육 수업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었다.




아주 사소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체육 수업 개선 시도


내가 체육 수업에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게 된 것은 큰 포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컴퓨터를 좋아했고 모바일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모바일 기기에도 관심이 많았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수업 중에 내가 조금이나마 편해지기 위해서 활용하였다. 그 시절 내 시각에서 체육 수업을 잘 하던 선배님들을 봤을 때, 내 수업과 가장 큰 다른 점은 다양한 기록물과 참고자료를 활용하신다는 것이었다. 체육 수업 시간에 운동장에 교과서를 들고 나오기도 하고, 수업 중 필요할 때마다 개인별 학습지나 모둠별 활동지 등을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따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학습활동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선배님들의 수업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천하기 위한 방법적 도구로서 테크놀로지가 활용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수업 중 탁구 단식 리그를 운영하고 경기기록을 바탕으로 수행평가를 한다고 하면 학생은 자신의 경기가 끝나면 자신의 경기기록지에 경기결과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매번 수업시간마다 학생은 교사에게 자신의 경기기록지를 받아서 수업 중 경기 결과를 기록하고 수업이 끝날 때 교사에게 제출한다.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의 경기 결과를 종합하여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주거나, 최종적으로 모든 경기가 종료되었을 때 경기 결과를 종합하여 수행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학생들에게 결과를 공지하게 된다. 수업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지만, 몇 년간 이렇게 수업을 진행해보니 기록을 관리하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혹시라도 기록지가 분실되거나 파손된다면 평가의 근거 역시 함께 사라지는 대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2013년 구글 설문지와 스프레드시트를 탁구 단식리그에 적용했을 때, 왜 이렇게 했었는지를 도식화 했던 내용


십여년 쯤 전 우연히 구글 문서도구(Google Docs) 서비스 중 설문지(Forms)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학원 연구방법 수업에서 구글 설문지 기능을 통하여 델파이 연구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불현듯, 이 기능을 활용하면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각종 기록이 업데이트되면서 피드백되는 탁구 리그 수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곧바로 실천을 했었다. 학생이 직접 스마트폰이나 준비된 PC를 통해 클릭 몇 번 하면, 기록이 실시간으로 종합되어 모든 학생이 자신의 경기 기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경기 기록까지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학생들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나름대로 전력을 분석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까지 목격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무엇보다 만족했던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신경쓸 부분이 없어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확보된 시간은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며 경기력과 직접 관련된 피드백을 적절한 순간에 제공하는데 사용되었다. 덕분에 더욱 재미있고 역동적인 수업이 되었던 것 같다.


구글 설문지 기능을 이용하여 경기 기록을 수합하여 리그 순위표에 자동적으로 반영되게 했던 내용,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2012. 수서중학교 재직 당시)


40~50대의 학창시절, 그러니까 80~90년대 한 학급에 50~60명이었고 체육관도 없던 시절의 체육 수업 내용들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하면, 소수의 인원만 참여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대기할 수밖에 없는 실제 경기보다는, 이른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엄선한 기능을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일제히 학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가(이른바 실기평가) 역시 미리 공지된 특정한 수업 시간에 1~2회의 정해진 기회만을 부여받는 일반교과의 정기고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30여명의 학생이 수업의 주제별로 적절한 장소에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실제학습시간(ALT-PE)을 누리게 되었다. 체육 수업의 모습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만 당연한 상황이 된 것이다. 평가의 방법 역시 제한된 기회만 제공되는 공정성 중심의 평가운영보다는 가능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타당성 중심의 평가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상대적 변별보다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취에 집중하는 지금의 교육과정 체계에 맞는 수행평가가 시작된 것도 이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탁구 복식 랠리 수행평가를 한다고 했을 때, '특정 수업시간을 정하여 출석번호 순서대로 교사의 앞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은 더 많은 학생들에게 가능한 최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교사의 눈 앞에서 네 명의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을 때, 다른 학생들이 각자의 탁구대에서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수행평가 기준을 달성한다고 해도 이는 인정받기 어려운 연습에 불과한 것이다. 당시의 나도 그랬고 주변의 체육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학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과제를 학습하고 목표한 기준을 성취했을 때 교사의 앞에서 수행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근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학생들은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받게 될 수 있을 것이고, 실제학습시간의 증대와 함께 더 많은 학생이 성취도에 도달하는 완전학습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체육 교사들이 영상 기록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의 초창기만 해도 모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시기도 아니었고 디지털 캠코더 역시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운 기기였다. 하지만, 학교에는 적어도 몇 대의 캠코더가 있었기에 이를 활용할 수 있었고, 보다 내실있는 수업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동영상 수행 기록을 기반으로 평가를 진행했던 모습. (2012. 수서중학교 재직 당시)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어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면서, '과제수행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이를 근거로 활용하는 수행평가'는 최근 몇 년 동안 학교 체육 수업에 보편화 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중등 학교에서 평가와 성적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고려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반 수업기록을 수업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국면에서 원격수업이 시작되자 교육부가 이러한 방식의 평가를 공인해 주었다. 원격 수업 상황에서 기존의 방법으로는 수행평가 자체가 어려워진 다른 교과에서, 원래부터 수행 중심이었던 체육·예술 교과를 부러워하는 신기한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분위기가 확 뒤바뀐 것이다.


원격수업에서의 수행평가 방법(2020, 교육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일반적이고 사소한 기술에 불과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신기한 기술을 체육 수업에 활용하는 신기한 교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내가 대단하고 어려운 기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했음에도 그랬다. 손으로 글씨를 쓰던 시대의 사람들이 키보드로 입력하여 출력한 문서를 대단한 기술로 생각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주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기술일지라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단순히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 기술을 자신이 고민하던 일을 개선하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있으며 그 고민이 깊고 일상화되어 있을수록 활용의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아주 어려웠지만, 이제는 쉽게 실천할 수 있게 된 수업


십 수 년 전, 나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달리기 수업을 실천하고 계셨던 선배님의 수업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내용은 이어 달리기 수업에서 각 주자의 구간별 속도를 분석하여, 합리적으로 주자의 순번을 정하고 각 주자별로 적절한 배턴 터치 지점을 계산한 후 해당 지점에 컨트롤 마크를 하여 전략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이었다. 중학교 체육 교과수업의 이어 달리기 수업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구간별 속도는 어떻게 측정한단 말인가? 의외로 간단하였다. 다음의 그림과 같은 방법으로 여러 차례 측정하여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학생선수를 길러내는 육상부도 아닌 일반적인 중학교 체육 수업 안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수업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많이 놀라면서 배웠던 것 같다.


육상 수업 중 단거리 달리기의 구간별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2003, 박준규)



위에서 이야기한 육상 이어달리기 수업을 지금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육상 이어 달리기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큰 감명은 받았지만 감히 실천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육상 수업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열정보다는, 교사가 준비하고 설명하고 관리해야 할 일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달리기의 구간별 속도를 측정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의 GPS 기반 트래킹 앱을 활용하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기술의 발전과 대중화에 따라 과거에는 감히 하기 어려웠던 수업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움직임 기록 앱 ( *출처-https://www.runtastic.com/ko )


영상을 활용하여 동작을 분석하는 수업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전문선수의 영역이었던 동작분석 시스템을 체육 수업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었지만, 여기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과 전문적 지식은 일반화 혹은 대중화를 어렵게 하였다. 하지만, 카메라와 컴퓨터가 결합된 손 안의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수백만원이 필요했던 수업은 아무런 추가 비용 없이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체육 수업을 설계하는 이론적 측면으로 설명하자면, 동료교수모형으로 수업을 설계할 때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가 동료교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AiZtMGjyC8

비디오 딜레이(Video Delay: 자동 촬영 및 지연 재생) 앱을 활용한 자기모니터링 (2014, 세곡중학교 재직 당시)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수업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분명 의미는 있는 일이며, 언젠가는 도입되어야 하는 기술이라면 누군가는 실험적 사례를 통해 방향을 보여주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을 활용한 교수학습방법은 학교 현장의 수업을 즉시 개선할 수 있는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교사들이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효과성이 이미 검증되었고 하고 싶은 수업이었지만 경제적 비용 등의 문제로 할 수 없었던 수업 중에서 이제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수업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에 열심히 수업을 했던 선배 교사들의 수업을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지금 시점에서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학교체육


학교란 곳은 학생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교육의 삼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 모두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학교란 곳이 사회의 변화 속도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요한 변화는 말 그대로 혁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의 무리한 적용은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결국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좋은 정책을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학교를 지원한다고 해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사가 대부분인 학교라면 아무리 좋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지원한다고 해도 이를 활용한 교육은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장애물에 불과할 수 있다. 우수한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는 교사는 기회를 살려서 내실있는 수업을 마음껏 펼쳐내는 기회로 삼겠지만, 누군가는 이 상황이 버거운 교사도 분명 존재할테고 이들로 인하여 학교의 분위기가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수 천 만원을 들여서 가상현실 교실을 구성하고 이를 활용하여 체육 교과 수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그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체험형 게임 중심의 단순 소모성 수업을 한다면 그 수업을 잘 된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학교에 기술을 도입할 때는 테크놀로지 전문가가 아닌 교육 전문가가 필요하고, 체육 수업에 활용할 기술이라면 체육 교육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다. 교육청에 들어와보니 실제로 이러한 부분에서 나름대로 치열한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체육을 위하여 테크놀로지가 활용되어야지,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 위한 학교체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체육 진흥 조례
제6조(학교체육내실화) ① 학교장은 체육교육과정의 수업시수 확보, 성별과 학생·지역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교수·학습방법의 개발, 전문 인력의 확보 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교육감은 체육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하여 각급 학교에 대한 체육교육 컨설팅, 체육 우수지도 사례 연구대회 등을 실시할 수 있다.
③ 교육감과 학교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기술을 활용한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게임물은 제외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학교체육 진흥 조례를 제정하여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학교체육내실화를 명시하고 있는 제6조 제3항에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활용한 학교체육 활성화 노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하는 기술을 활용한 학교체육 활성화가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학교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시함으로써 관련된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을 부여하는 조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항목들 중 '빅데이터'에 학교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체육 수업의 측면에서 빅데이터는 과정중심평가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의 학습기록을 축적하고 관리하여 이를 근거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타당한 교육의 본질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체육 교과 수업에서 학생과 관련된 가치있는 기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체육교육 전문가인 교사의 관찰, 동료학생의 관찰, 자기평가 기록 등의 방법을 활용해야만 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각종 센서, 클라우드 서비스 등의 대중화로 인하여 학생과 관련된 가치있는 기록을 보다 쉽고 정확하게 더욱 대량으로 축적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축구 경기에서 득점이나 어시스트 등의 기록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개인의 전술수행 능력이나 헌신적인 노력 등을 센서 하나로 쉽게 확인하여 경기력 평가에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0-P-PVDTnU

대중화된 움직임 추적 장치로 누구나 유명 축구선수처럼 경기수행 관련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사커비 유튜브)


빅데이터의 가치는 단순히 교수학습방법이나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빅데이터는 데이터 그 자체로도 가치가 크지만 다양한 방식의 융합을 통하여 어디로든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 지난 2년 동안 각 학교의 원격 체육수업에서 수집된 학생의 과제수행 영상이나 문서형식의 학습기록은 각 학교의 원격수업 플랫폼에 그대로 남아있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영상을 분석하여 체육 수업을 개선하고 평가도구를 개발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축적된 자료가 미래의 수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에 근거한 계획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인터뷰 (*출처-KBS 스포츠 유튜브 캡쳐)


체육 수업 측면에서 보면, 원격수업 기간 중 스포츠 리터러시를 길러주는 수업이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학생들이 스포츠의 다양한 기록과 역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수업이 많아졌던 것 같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마치 계기교육처럼 다양한 스포츠를 이해하고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수업들이 실천되었다. 덕분에 이번 도쿄올림픽을 시청하는 학생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한 종목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메달 중심이 아닌 선수들의 도전이나 기록의 가치 등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반적인 시민들의 입장에서도 메달의 획득 여부와 관계없이 수영의 황선우,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 선수의 경기를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마다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gkJ0bgFUT10

기록의 중요성, 데이터의 가치. (*출처-스포츠머그 유튜브 채널)




학교체육과 관련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누구나 필요한 순간에 이러한 정보들을 찾아서 활용할 수 있다면 더욱 다양한 융합시도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그동안 교육청에서 주관했던 연수와 관련된 자료들이나 연구대회에 출품된 내용들을 종합하여 분석한다면 우리의 체육 수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미래의 체육 수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기획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체육과 관련된 데이터들은 여러 곳에 파편화되어 있고, 어떤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 두 사람이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빅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체계화하여 축적하고 관리하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집단지성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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