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모임에서 제출한 소설
서정은 급하게 명품 구두가 필요했다. 다가오는 토요일 초대받은 결혼식에 꿀리고 싶지 않아서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서정의 베스트 프렌드 연지였다.
연지의 청첩장 모임은 다른 동기들과 함께했다. 내심 단둘이서 만날 것을 기대했던 서정은 살짝 빈정이 상한 채로 참석했다. 그래도 친구니까. 내가 가장 베스트 프렌드니까. 청첩장을 받기 전엔 가고 싶었다. 심지어 결혼한다는 사실을 다른 동기로부터 듣게 될지라도.
“5월이네. 되게 좋은 날짜다.”
“응. 오빠랑 나랑 그날 처음 만나서 일부러 결혼기념일도 사귄 첫 날에 맞추고 싶었어.”
“진짜 천생연분이다.”
“혹시 축가나 축시도 정했어? 요즘 친한 지인들이 준비해주는 경우가 많다던데?”
축가나 축시. 아마 나에게 맡기지 않을까? 우린 베스트 프렌드니까. 내가 노래를 좀 한다는 건 연지도 잘 알텐데. 기대하는 표정으로 서정은 연지를 바라봤다. 서정과 눈이 마주친 연지가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왜 남 얘기처럼 해. 난 네가 해줄 줄 알았는데.”
“나? 허연지, 제법인데? 나 요즘 교회 성가대 때문에 보컬 레슨 받는 거 알지?”
“알지. 인스타에서 봤어. 그래서 부탁하고 싶었어.”
“고맙긴 한데, 곡 몇 개 정해서 알려줄게.”
“아냐. 네가 뭘 부르든 좋아.”
서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 무수히 같이 갔던 노래방의 추억은 잊은 걸까? 서정은 연지가 넘겨준 청첩장 모서리를 꾸깃꾸깃 만졌다. 자존심도 꾸겨지는 기분이었다. 학부시절에 노래를 부른다는 상상도 못했던 동기가 연지의 하나 뿐인 결혼식 축가를 부르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생각에, 온몸이 서운함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날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서정은 머리 속이 복잡했다. 연지에게 내가 친한 친구인게 맞는 걸까? 연애도, 결혼도, 청첩장 모임도 이어서 축가까지 하나도 먼저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연지에게 먼저였던 적이 있었나. 우린 처음 만날 때부터 붙어다녔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연지는 서정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맞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축하해줘야 하고 연지의 친한 친구로서 빛나야 하는 자리에, 서정이 가는 게 맞는 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날 당일에 감기에 걸렸다고 할까? 갑작스러운 가족 행사가 생겼다고 할까? 청첩장 모임 이후 이런 저런 변명을 골똘히 생각하던 서정은 다시 축가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던 연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결심했어.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띵동-
[서정아, 결혼식 때 뭐 입고 올거야?]
방금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결심 했는 데 귀신같이 연지의 카톡이 왔다. 메시지는 읽었지만 우물쭈물 바로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그냥 지금 못 간다고 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라. 못갈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기는 건 어떨까? 상처 받진 않겠지. 답장도 못하고 시간만 가고 있는 그 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너에게만 말하는 건데. 시댁에서 하객들 차림을 많이 눈여겨 볼 것 같아.]
“….”
[서정이는 내게 가장 친한 친구니까 잘 입고 와줄거라 믿어. 항상 고마워, 서정아.]
망했다. 연지에게 상한 마음으로 인해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마음이 기울었던 서정은 결혼식이 일주일이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변변찮은 하객룩을 준비하지 못했다.
[참고로 신발을 가장 많이 볼 것 같아. 구두로 꼭 잘 신고 와. 부탁할게, 서정아.]
특히 당장 구두를 장만해야 한다.
옷은 작년에 다른 결혼식에 입고 갔던 자켓과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계절감은 안 맞아서 걱정이 되지만 검은 색이라 그렇게 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구두였다. 평소에 운동화를 신는 서정에게 구두는 대학생 때 유행따라 샀던 핑크색 단화 뿐이었다. 연지가 부탁한 구두는 연지의 자존심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자존심을 위해 값비싼 구두를 구해야만 한다.
회사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몰래 화장실에서 중고앱을 살펴봤다. ‘여자 명품구두‘, ‘명품구두 230‘, ’구X 230‘… 그렇게 많던 매물이 해당 검색어들로는 현저히 적었다. 퇴근길에 백화점에서 일단 구두를 구매하고 한번 신은 다음 환불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이번주는 매일 야근 예정이라 백화점 운영 시간까지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한 손에는 중고앱 스크롤을, 한 손에는 손톱을 씹으며 다리를 떨었다. 그러다가 스크롤을 멈췄다. 낯익은 구두 하나를 발견했다.
[명품/구X/여자/230 팝니다]
서정이 입력했던 모든 검색어가 맞춘 것처럼 모두 들어가 있는 게시글이었다. 서정은 망설이지 않고 거래 채팅을 시작했다.
[오늘 당장 살 수 있나요?]
빨리 구매해야 되는데… 어서 답장이 오길 바라며 서정은 손톱을 연신 씹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칼답장이 도착했다.
[네. 가능합니다. 대신 당일 구매는 현금만 가능해요.]
[제가 현금 인출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만나서 계좌 이체 가능할까요?]
[아뇨. 실물 현금만 거래합니다. 현금 없으시면 거래 안합니다.]
이거 사기꾼 아니야… 왜 현금만 받지?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선뜻 거래 확정이 망설여지는 서정은 나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때, 결혼식까지 남은 일자를 생각했다. 딱 이틀밖에 안 남았다. 다음 거래를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는 가정이 있어도, 과연 그 다음 거래가 있을지 희박했다.
[네. 살게요. 오늘 역에서 9시에 보시죠.]
짭 아니겠지. 아니다. 지금은 짭이여도 구매해야 된다. 정신없는 결혼식장에서 구두가 짭인지 진짜인지 연지의 시댁이 비로 판단하진 못할 것 같다. 서정은 구두의 진품 여부보다 결혼식에 초대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정성을 가져오는 지 연지의 자존심을 판단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서정은 최근 거래 중 가장 쿨하게 확정 버튼을 눌렀다. 이미 저질러진 거래지만 다시 구두 사진을 살펴봤다. 묘하게 익숙한 구두였지만 유명한 명품 구두라 여러 광고 지면에서 봤겠거니 생각하며 넘겼다.
9시 XX역. 업무가 끝나자마자 서정은 지하철로 달려갔고 다행히 약속 시간까지 늦지 않게 이동하고 있었다. 가던 도중 중고앱 알람이 울렸다.
[저는 먼저 도착했습니다.]
[네, 저도 지하철로 이동 중이에요. 5분 뒤에 도착합니다.]
거래 상대와 척척 잘 맞는 호흡으로 거래는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정은 이 구두만 사면 내일 완벽하게 연지의 결혼식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빛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친구를 위해 전날 명품 구두를 중고 거래하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역에 내리자마자 가뿐한 마음으로 서정은 개찰구로 향했다. 상대는 바로 다른 역에 사는 주민이라 거래가 끝나고 이동하기 위해 개찰구 나가기 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을 제안했다. 약속 장소에 가까워진 서정은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중고앱을 키려다가 멈칫했다. 낯익은 얼굴이 그 앞에 서있었다.
“연지야. 우리 동네는 왠일이야?”
“어? 아 맞다, 서정이! 이 동네 살지?”
“응. 여기까지 왜 왔어? 결혼식 전날인데 준비해야 되지 않아?”
“아… 나 그게… 볼일이 있어서.”
연지는 서정의 동네에서 정반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이렇게 먼 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연지를 살펴보던 서정은 연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발견했다. 퍼뜩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설마 상대가 연지일지도 모른다는.
“연지야.”
“서정아, 반가웠어. 나 좀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내일 보자!“
“연지야, 구두 팔려고 왔어?”
“어?”
서정이 연지의 손에서 쇼핑백을 집어들었다. 당황한 연지가 왜 그러냐며 소리를 쳤다. 쇼핑백 안에 구두 박스를 열었다. 박스 안에 구두를 본 순간 쿵- 무언가가 서정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익숙한 구두. 기시감이 들었던 그 구두.
“아니, 내 물건인데 왜 너 마음대로 만져!”
“연지야.”
“서정아, 너 이렇게 경우가 없었니?”
“연지야, 이거 내가 사준 구두잖아.”
“…어?”
애타게 찾던 그 구두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연지에게 줬던 선물에서, 서정에게 비수가 되어 다시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