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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07. 2024

누구를 위하여 덤벨을 들 것인가

떨리는 근육

아이를 셋 키우는 친구가 있다. 몇 해 전, 아이들이 많이 어려서 복닥복닥 정신없는 날을 보내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늙어도 좋으니까 애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어.     



친구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다들 한 해 한 해 빠르게 늙어간다고 아우성인데 늙어도 좋다니. 육아가 얼마나 고강도의 난제였으면 젊음과 해방을 맞바꾸어도 좋다고 했을까. 그만큼 인간에게 자유란 소중한 것인가 보다.      


새해가 되고 친구에게 연락을 한 김에 ‘늙어도 좋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지 물었다. 친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취소, 취소!!!”라고 외쳤다. 흰머리는 말도 못 하게 늘었고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평소에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식탐도 많지 않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어서 지방간과 줄 긋기가 잘 되지 않았다. 친구를 담당했던 젊은 의사는 그녀가 주말에 즐기던 맥주 한 캔의 기쁨을 단호하게 앗아갔다. 맥주 반잔의 타협 시도마저 단칼에 거절당했다.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요즘은 동네 엄마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나누는 인사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이들 ‘학원 어디’ 다니느냐는 말이 인사였다면, 지금은 ‘어느 병원’에 다니느냐가 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골골대던 사람은 명이 길고,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훅 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경각심의 문제다. 친구는 심각하지 않은 작은 질환이라도 하나 있으면 경각심을 갖고 건강관리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는 지방간 비상령이 내려진 덕에 관리의 수위를 높이게 생겼다고 했다.  


노년은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마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에 적혀 있는 경고 문구 같다.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가까이 있음     


노화는 진행형이다. 사람은 모두 노인이 된다. 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한 장면에서 노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보부아르는 노화를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라고 했다. 노인들이 절망에 빠질 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모든 노인들이 반드시 절망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실존주의자들에게 ‘사람’이란 곧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스스로를 아픈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면 ‘아픈 사람답게’ 행동하려고 한다. 노인의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으면 ‘노인답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노년 내과 정희원 교수는 한국의 노년층은 근력운동을 안 해도 너무 안 해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노인들의 근력운동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지인의 어머니가 운동을 하려고 집 근처 헬스장을 가셨다. 문을 열고 안을 둘러보니 젊은 사람들 일색이어서 그냥 나오셨다고 한다. 나의 엄마도 ‘남사스러워서’ 헬스장에서 덤벨을 들고 운동을 하기 싫다고 하신다. 

     

정희원 교수는 ‘노년기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의로 걷지 못하게 되고, 와상(침대에 누워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그 어떤 경고보다 이 경고가 강력하게 다가왔다. 


친구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 따기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꽤 오랜 시간 필라테스를 해 온 친구는 이제 어지간한 수업은 성에 차지를 않는단다. 뿐만 아니라 친구는 PT도 받고 있다. 나도 일주일에 두 번 크로스 핏, 두 번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내 몸이 자유를 잃었을 때 요양보호사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에 비하면 푼돈이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들어야 하는 것은 근육을 부들거리게 만들 덤벨이다. 아마 내가 60대가 되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사님들도 덤벨을 들고 상체를 부수는 모습이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엄마의 또는 지금의 노년층의 남사스럽다는 마음도 이해는 한다. 그분들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타인에게 이양해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만든다.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사실 헬스장에 가면 사람들은 잘 다듬어진 근육을 관찰하기 바쁘지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담담하게, 해결은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친구여서 든든하다. 


친구와 나는 근육을 잘 다져나가 보자고 새해 인사를 다부지게 나누었다. 


누구를 위하여 덤벨을 드는가. 


근력운동이야말로 진정한 노후대비이다. 근육이야말로 노년의 자유를 보장한다. 





표지그림 : 구스타프 클림트, <여성의 세 시기>, 1905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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