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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08. 2024

들여다보지 않으면 벌레가 꼬인다

어디에서 들어오는 걸까

   

방에 벌레가 많아? 약을 쳤는데.

많진 않고요, 무지하게 큰 벌레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
그런데 방충망도 있는데 도대체 그렇게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정원의 질문에 주인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 더니 이내 득도한 듯 인자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지난주인가, 집에 벌이 나타났다. 벌은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로 2층 복도 걸레받이 아래에 기대듯 서 있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는 이미 명을 다해 뒤집어진 벌이 있었다. 두 녀석을 키친타월로 잡아서 쓰레기 통에 버리고 비닐을 꽁꽁 묶었다.      


어느 밤 거실 화장실을 가려다가 문 앞에 붙은 벌을 발견했다. 이 녀석은 아직 기운이 왕성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다가 착지한 순간 스프레이를 뿌려 숨통을 끊었다. 약을 너무 많이 뿌려서 호수가 되었고 벌은 익사한 꼴이 되었다.      


벌에 쏘인 적이 있어서 벌 공포증이 생긴 아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밤만 되면 왠지 벌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고 겁을 냈다.      


재작년쯤인가 옆 집 캐서린이 자기 집에 자꾸 벌이 나타난다고 우리 집은 어떠냐고 물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어디에서 벌이 들어오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의심이 가는 곳은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에는 여분의 이불, 선풍기, 철 지난 옷들, 여행용 캐리어,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 방에는 거의 들어갈 일이 없었다. 아들이 북쪽 방을 자기 방으로 만들고 나서 그 방에 있던 물건들을 버리다시피 다락방에 투척했다. 다락방은 예고 없이 복잡해졌다.      


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스프레이와 다이슨 청소기를 들고 다락방으로 침투했다. 방 안을 둘러보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블라인드에 벌이 두 마리, 문 아래에 또 한 마리, 천정에 파리가 한 마리, 바닥에 노린재 두 마리, 창 틀에 죽은 파리 한 마리.      


살아있는 것들도 기운이 없길래 굳이 스프레이로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기로 했다. 다이슨 청소기의 넓은 면을 제거했다. 그리고 마치 고스트 버스터즈가 된 기분으로 벌들을 빨아들였다. 천정의 파리는 강적이었다. (다이슨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실망) 기어코 스프레이를 사용하게 만든 파리는 창틀에서 파르르 떨다가 숨을 거뒀다.      


밤이 깊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다. 두고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다락방을 나왔다. 날이 밝았을 때 나는 스프레이와 청소기를 붙잡고 다시 다락방으로 향했다.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탐색을 하니 이미 건조해진 파리의 시체와 벌의 시체를 몇 구 더 발견했다.     

 

청소기로 시체들을 빨아들이고 대대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다락방이 환해지도록 비우고 나니 라디에이터 아래에서 벌이 한 마리 기어 나온다. 다시 고스트 버스터즈가 되어 청소기로 놈을 해치웠다. 청소기의 먼지통 안에서 기어 다니는 적을 보며 잠시 벌 멍 타임을 가져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벌레가 꼬이는구나. 


방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아상'에 대해 탐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성찰하고 관찰하지 않는 마음에는 자만이 깃든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상은 강해지고 괴로움은 커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만은 나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성찰이 아닌 사견이다.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자만심, 내가 타인보다 못났다는 자기 비하, 과대평가도 열등감도 모두 자만에 속한다.      


어느 순간 살던 대로 살려고 하는 불필요한 회복탄력성이 발휘될 때가 있다. 어리석음을 바로 알아차리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후회를 부르는 행동을 하고야 만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 남과 비교하며 느끼는 질투나 우월감, 있어 보이고 싶어서 부리는 허세와 허영 같은 것들 말이다.      


나를 내세우고, 항상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잘나면 우쭐, 남보다 못나면 우울해진다. 아상이 왜곡되면 자만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고 일묵스님은 말씀하신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집착, 욕망, 질투, 우월감, 허세, 자만 등이 꼬인다. 모두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은 어디에서 들어오는 것일까?     


어디로든 들어온다.      


건강한 자아는 유익한 마음을 많이 일으킬수록 발달한다. 남을 도와주고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통찰로 인해 자만이 약해지면 괴로움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나를 높이려고 하지 않고 유익한 마음을 쌓아가야 한다. 


만약 벌이 더 들어온다면 패스트 컨트롤 업체를 불러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유독 춥지 않아서 벌레들이 어디론가 기어들어오는 것 같다. 다락방을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내 마음도 괴로움이 꼬이지 않도록 자주 들여다보자. 





표지그림 : 신사임당, <가지와 벌>, 16세기


*글 시작 상자

권여선의 단편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에 나오는 대화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놀러 간 펜션 방에서 사슴벌레를 발견하고 ‘사슴벌레식 문답’이 시작이 된 장면이다.      


*참고영상

<아상이 강할수록 괴로움이 커진다>ㅣ일묵스님ㅣ2021.01.20. 초기불교 제따와나선원 정기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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