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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pr 07. 2024

엄마는 진정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는 엄마 되기 

    

현재 골프 레슨을 아들과 2인 1조로 받고 있다. 오늘 아침, 브런치에 올릴 '감정'에 대한 글을 작성하고 있었다. 골프레슨 시간이 임박해 쓰기를 멈추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에 타면 아들은 내 핸드폰으로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튼다. 아들은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면 나에게 들어보게 하고 소감을 묻는다.      


오늘 함께 골프레슨을 가는 중에 아들이 새로운 노래를 틀었다. 꽤 듣기 좋았기에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런데 시큰둥하게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    

  

“응.”     


‘몰라’도 아니고 ‘응’이라니.      


유튜브를 통해 틀은 음악이니 그저 핸드폰 한 번 들여다보고 가수 이름을 말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기분 상함 1단계에 들어갔다. 아들에게 내가 지금 한 질문에는 ‘응’이란 대답이 좀 안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이런 식의 대화는 ‘나는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다.’로 해석된다고 했더니 또 “응”이라고 답을 한다.  

    

마침 빨간 신호에 걸려서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랑 말하기 싫다고?”      


내가 되물으니 아들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한번 “응.”이라고 했다.     

 

내 몸의 자율신경계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왔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며 호흡이 빨라지고 심박수가 증가했다.    두 뺨은 마치 치과 마취가 풀릴 때처럼 뻣뻣하고 얼얼해졌다.      


나는 기분 상함 2단계에 진입했고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아 졌기에 음악을 꺼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적막에 휩싸인 채 차는 골프장을 향해 계속 달렸다.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내 감정을 이해했다. 거부당했을 때의 수치심, 불쾌함, 기분 나쁨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들이 엄마와 무조건 대화를 하고 싶어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나는 하루 종일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지낼 수도 있다. 아들이 혹여나 말을 걸면 “왜? 나랑 말하기 싫다며?” 하고 유치하게 딴지를 걸 수도 있다. 기어이 아들에게 무례했음을 인정하라고 하며 사과를 받아낼 수도 있다. 

     

옛날의 나였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긴 시간은 길어야 2분이었다. 나는 차 안의 적막을 깨고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래도 너랑 얘기하는 거 좋으니까 언제든 말 걸어줘.”      


타인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기 수용이 우선이라고 한다. 내가 나의 불쾌함을 수용하고 나니 아직 어린 아들이 미숙하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엄마는 최후의 보루이고 가정은 베이스캠프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를 무시한 게 아니고 그 순간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무시당했다는 건 나의 왜곡된 해석이다. 이 왜곡된 해석에 동요되어 내 감정과 아들의 정서에 큰 생채기를 내지 않았다.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썼다는 건 성공했으니까 남기고 싶어서 쓰는 거지 매번 모든 상황에서 조절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해/곡해도 수시로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 이것이 나의 '감정 지향점'이다.      


골프 레슨이 끝나자마자 아들이 나에게 와서 말한다. 


"엄마 스시 먹으러 가자!! 나 스시 먹고 싶어." 

               




표지그림 : Jacques-Louis David, < Anger of Achilles>, 1825


다음 편 예고 : 원래 오늘 쓰려고 했던 감정 시리즈 중 1탄 ‘결정하는 감정’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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