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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17. 2023

환상의 자아

I am that I am.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며, 부모님의 딸이다. 나의 전공은 일본어이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해서 한국어 강사로 일을 했었다. 오랜 시간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자각이 들어 지금은 술을 끊었다. 그리고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저 많은 명사들이 '나' 그 자체인가?


한국인, 엄마, 아내, 딸, 강사, 중독자, 학생은 주어졌거나 내가 만들어낸 역할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전공이 일본어이면 나는 '일본어'인가? 성장배경, 문화, 가족 배경과 같은 개념적인 나는 '에고'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기억, 그 기억에 대한 해석, 현상을 보는 관점과 감정, 그에 따른 반응과 의견은 모두 에고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에고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이다. 이것은 개인이 살아온 배경에 따라 결정된다.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자동 반복적 생각의 흐름이다.  


에고는 내 안의 관종과도 같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인정을 받음으로 인해 그 세력을 무럭무럭 키운다. 관심은 심리적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자신을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보는 관념 속의 자아의식이 바로 에고이다. 관심이나 인정이 반드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개념이 아니어도 된다.


예전에 어떤 두 사람이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야."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경계선‘인가? '성격장애'인가?


나는 그중 한 사람에게 자신을 '경계선 성격장애'와 동일시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의중을 들킨 기분이 들었다며 자신도 모르게 자기는 불쌍한 사람이니 보살핌을 받기 위해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말을 타이틀로 달았던 거 같다고 했다. 어느 날 금쪽 상담실을 보는데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내담자에게 "병명 뒤에 숨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전문가는 저렇게 말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병을 자신의 개념적 정체성의 일부로 만들 때, 에고가 강해진다고 한다. 의사로부터 명명받은 '경계성 성격장애' 또는 '분노 조절장애'를 앞에 내세웠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자기가 한 행동은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자신의 병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믿음이다.


경계선 인격장애는 자아상, 대인관계,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성격장애이다. 스스로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환자의 정서가 정상에서부터 우울, 분노를 자주 오가며 충동적이기 때문에 자해 자살행위도 잦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DSM-V)의 기준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자살 소동을 벌이거나 지나치게 폭력적이 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을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한다.


위와 같은 현상이 있었기에 정신과를 찾았고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병명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당위를 설명하는데 진단명을 사용한다. 평범하지 않은 극단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해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고는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어서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알코올 중독자도 마찬가지다. 정신의학과에서 의사로부터 "당신은 알코올 중독자가 맞습니다"라고 진단받는 순간 술을 마시는 것은 내가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여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시면 안 되는데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인 것이다.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서 육체를 더 이상 손상하지 않을 책임이 생기는 것이지 '나=당뇨'가 아니다.


병명을 부여받고 그 역할에 충실하는 드라마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병이 아니라 '병명'에 점령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특정한 역할이나 병명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신을 한계에 가두는 일이다.



 내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특정한 증상을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은 이해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지만 그것을 에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면 계속 에고에 갇혀 있게 된다.


자의식 강화를 위한 과시, 돋보이기, 강한 인상, 관심 끌기, 특별한 존재가 되려 하기를 멈추라고 톨레는 말한다. 에고에 휘둘리는 것을 멈추고 내적 공간의 인식을 통해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나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볼 때 평가도 이름 붙임이나 구분, 해석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관찰자가 된다.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어떠한 것을 하고자 하는 강박적 욕구를 정당화하려는 순간을 간파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현존이다. 에고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자동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마음이 실체를
분해하는 방식입니다.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가

신의 운명을 실현하는가

아닌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을

어떻게 하는가는

당신의 의식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의 의식 상태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표지그림 : Jean Hugo. The Flight (Beginning of the End of the World), May–August 1931


[네이버 지식백과] 경계성 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연금술사


*이 글은 뉴욕 혜윰님의 댓글에 대한 댓'글'입니다. 제 인생 책이라고 믿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덕분에 책을 다시 한번 훑어볼 수 있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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