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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25. 2023

오른팔 쉬는 날

내 몸에 더 관심을......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 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박완선 산문 <호미>


얼굴을 옆으로 뉘이고 바닥에 엎드렸다. 팔을 위로 들어 올리라고 뇌선생이 신호를 보냈다. 왼팔은 착실한 모범생처럼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오른팔은 들은 체 만 체한다. 왼팔은 자리에 앉으라고 신호를 보낸 뇌선생이 오른팔에 눈을 부릅뜨고 더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오른팔은 요지부동이다. 


이번에는 일어서서 차렷자세를 취한다. 허벅지에 붙인 손을 끌어올려 허리춤에 올리도록 해본다. 역시나 왼팔은 반항하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다. 오른팔은 나에게 삐쳐도 단단히 삐친 듯하다. 나의 허리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양 늘어진 채로 버틴다. 


뒷짐을 져보자. 왼팔을 허리 뒤로 돌려 오른팔을 잡아당긴다. 팔을 잡아가려고 하는데 오른팔이 버틴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아이가 교실 문 앞에서 버티는 것처럼. 당시 아이의 마음도 지금의 내 팔처럼 아팠나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오십견인가. 어깨 석회화 때문에 주사를 맞았다는 지인도 있다. 한국처럼 쉽게 정형외과를 갈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리저리 검색을 돌렸더니 왠지 오십견이 맞는 거 같다. 예전에 읽었던 황윤권 정형외과 전문의의 <수술 권하는 정형외과의 비밀>이라는 책을 ebook에서 불러왔다. 


책에서는 회전근개 파열, 충돌증후군, 석회화 소견 등등 아픈 어깨의 증상을 고치려면 이와 같은 어려운 이름들을 우선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한다. 어깨의 통증은 대부분 오구돌기를 중심으로 붙어있는 근육들이 긴장을 반복하며 굳어지게 된 까닭이다. 오구돌기만 풀어주면 비싼 돈을 내고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단다. 


한마디로 오른팔이 삐친 이유는 내가 긴장만 많이 주고 이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 상태가 어느 정도로 나쁜 것인지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좀 멀리 떨어진 재활한의원을 찾아갔다.  다행히 오십견은 아니었다. 역시나 오구돌기 주변의 근육이 굳어서 생긴 통증이었다. 침으로 자극을 주고 전기침 시술까지 받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팔이 더 뻐근하다.  


통증으로 인해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온 동네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유튜브를 켜고 어깨 통증 완화 운동을 해본다. 덜덜 떠는 오른팔을 괜찮다고 다독이며 마지막 운동을 한다. 왼손으로 수건을 잡고 등뒤로 늘어뜨려 오른손으로 그 끝을 잡는다. 위로 끌려 올라가는 오른팔이 비명을 지른다. 어떻게 알았는지 영상에서 숨 참지 말고 호흡하라고 한다. 


요즘 유튜브의 운동 선생님들은 참 친절하시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가동범위 내에서 하라고 응원해 주신다. 수건은 이제 눈물을 닦는 용도로 사용된다. 나이 먹고 잘 하지 않던 육두문자가 혀끝에 맺힌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피로가 몰려온다. 


몸이 아플 때 나만의 신념이 있다. 

- 아프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뼈가 부러지지 않은 이상 움직인다. 

- 아프다고 우울해하지 않는다.

- 아픔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아프다는 이유로 내가 내는 화를 정당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프면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타인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고 그 이유가 아파서였다고 변명을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어른스럽고 싶다. 내가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아파서 그랬다고 하면 아이도 배울 것이다. 


예전에는 상대감사를 많이 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불가촉천민을 보면 나는 이렇게 깨끗한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다가 문득 왜 비교를 통한 감사를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절대감사를 한다. 그저 내 몸이 존재함에 감사한다. 내 몸에 소홀했다고 이 정도로 삐쳐주는 것에 감사한다. (아니, 안 그래도 개학하면 요가 등록하려고 했다고)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오른팔이 삐친 마음을 거둔 거 같다. 진짜 오십견이 오기 전에 신경 쓰고 관리하라는 최후통첩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자판을 두들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표지그림 :  <마르크스주의가 병자를 낫게 할지니 Maxi will give health to the sick>, 프리다 칼로,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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